전국의 농촌 들녘이 모내기로 분주하다. 필자도 틈만 나면 농촌현장을 찾아 농업인들의 주름진 손을 잡고 애환을 함께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벼 직파재배 시연행사에 참여하고 쌀가공제품 특판행사장을 찾았다. 소만(小滿)을 맞아 초등학생들과 손 모내기체험을 하는가 하면 다음주에는 사료용 벼 직파시연회에도 다녀올 생각이다. 보름 사이에 네 번이나 쌀농사 현장에 갈 일이 생기는 것을 보면 농업에서 쌀이 차지하는 무게감이 새삼 느껴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에서 쌀의 위상은 그것과 거리가 멀다. 지난해 수확기 쌀값은 20년 전보다 낮았다. 그 결과 주식인 쌀 생산액이 처음으로 돼지 생산액에 이어 2위로 떨어졌다. 밥 한 공기 분량인 쌀 100g 가격이 180원 정도에 불과해 ‘커피 한잔 가격이면 일주일간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쌀 소비촉진 문구를 보면 왠지 서글픔이 밀려온다.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은 쌀이 창고에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쌀 소비감소가 생산감소보다 더 커서 발생한 일이다.
농협은 쌀 문제 해결을 위해 온몸을 던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벼 매입자금 1조8,000억원을 조달해 수확기 벼 매입량을 사상 최대인 180만톤으로 늘렸다. ‘쌀밥이 맛있는 집’ ‘쌀 사랑’ 캠페인 등 소비촉진에도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올해 중에는 쌀가루·쌀과자 공장과 식품회사를 설립해 쌀 가공을 통한 소비확대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그러나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공급과잉 현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 정책적 지원과 함께 전 국민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우선 쌀 대신 콩·사료작물 같은 타 작물을 재배할 경우 소득감소분을 보상해주는 ‘생산조정제’를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 이는 농가들이 피해를 보지 않고 쌀 생산을 줄이고 식량안보를 위한 생산기반도 유지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이다.
특히 사료작물의 경우 축산조사료나 배합사료의 원료로 활용해 연간 100만톤에 이르는 수입사료를 대체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쌀 소비를 위한 다각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밀가루 대체를 통한 쌀소비를 고려할 수 있다. 1인당 연간 34㎏에 이르는 밀가루 소비 중 5∼6㎏만 쌀로 대체해도 약 30만톤의 수요가 창출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쌀농사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지지이다. ‘쌀농사는 생명·안보산업이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공익적 가치가 있다’고 아무리 외쳐도 결국 소비를 늘리거나 정부대책을 이끌어내는 것은 국민적 응원과 공감대가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혼이자 생명의 끈인 쌀 농업의 미래를 위해 국민적 이해와 관심이 절실한 때다.
김병원 농협중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