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는 노동시장의 안정성보다 유연성 제고 쪽에 보다 무게를 뒀다. 개정을 추진한 기간제법과 파견법, 지난해 1월 발표한 공정인사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 지침 등 양대 지침 역시 사실상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와 일정 부분 궤를 함께한다. 기간제법 개정안은 기간제 계약기간을 총 4년까지 연장하는 내용을, 파견제법 개정안은 파견 허용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을 각각 담고 있었다. 양대 지침은 정부 해명에도 불구하고 노동계에 의해 ‘쉬운 해고’ 와 ‘일방적 임금 삭감’ 지침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결국 수포로 돌아갔지만 이전 정부가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에 열을 올렸던 배경에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 작용했다.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성이 다른 나라와 견줘 현저히 낮다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실제 유니언뱅크(UBS)가 지난해 WEF에 발표한 국가별 노동시장 유연성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139개 조사대상 국가 가운데 83위였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고용 유연성을 높여 직원 생산성에 따라 연봉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해주거나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를 자유롭게 해주지 않는 이상 기업에서는 비정규직 전환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며 “비정규직 없이 정규직만 뽑으라고 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결국 생산성에 따른 채용의 자율화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을 추진하면서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와 관련해 이렇다 할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오히려 다소 모호한 입장을 내비쳤다. 유일호 부총리는 지난 3월 “정부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안정성 제고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에서 상충하기 일쑤인 유연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자고 한 것이다. /세종=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