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1월9일.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은 비서진의 급전을 받고 잠에서 깨어나야 했다.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로부터 미국을 향해 날아오는 소련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탐지했다는 보고가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지미 카터 대통령이 부재중이어서 브레진스키 보좌관이 핵 버튼을 누를 최종 권한을 갖고 있는 상황이었다. 안보 라인은 즉각적인 핵 보복을 주장했지만 브레진스키는 대통령을 호출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컴퓨터 오작동에 따른 가짜 경보로 판명됐다. 과거 냉전 시대에 가장 긴박했던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브레진스키는 헨리 키신저와 함께 미국의 3대 외교 거물로 꼽힌다. 브레진스키가 민주당의 외교 브레인이라면 키신저는 공화당 계열이다 보니 두 사람의 관계는 극히 나빴다고 한다. 제럴드 포드 행정부 시절 브레진스키가 사사건건 외교정책에 토를 달고 나서자 키신저에게 회의 석상에서 ‘창녀 같은 놈’이라는 막말까지 들었을 정도다. 1979년 이란 주재 미국대사관 인질 사건 당시 브레진스키가 강경 진압을 주도하면서 온건파인 사이러스 밴스 국무장관을 물러나게 만든 것은 유명한 일화다.
폴란드 출신의 브레진스키는 소련에 대해 강경 대처를 주창해온 매파였으며 관여정책을 선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산주의 국가들과 꾸준히 교류하고 협력해 서서히 체제를 바꿔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한국과도 깊은 인연을 맺었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 구명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일찍이 중국의 외교적 부상을 경계해야 한다고 한국에 주문해왔다. 역저 ‘거대한 체스판’에서는 미국의 패권 유지 전략을 소개하면서 한국이 지정학적 구도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충지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브레진스키가 26일(현지시간) 향년 89세로 별세했다. 그는 2008년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외교정책 고문을 담당했고 정권 출범 후에도 그림자 외교고문으로 불릴 만큼 왕성하게 활동해왔다. 그가 생전에 비유한 대로 한국은 지금 강대국이 맞붙은 거대한 체스판 위에 덩그러니 올려진 신세인지도 모르겠다. /정상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