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세무학회장을 지냈던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2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우리나라는 영수증 없이 비용처리해주는 경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며 “현금거래가 주로 일어나는 업종에 대해서는 인정비율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실제 비용은 총매출액의 60%밖에 안 되는데 영수증 없이도 70%까지 비용으로 인정해주겠다고 하면 누가 증빙을 하겠는가”라며 “투명 재원 확보 차원에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경비율은 사업자 연간 매출에서 사업경비를 산정할 때 적용되는 비율이다. 예컨대 경비율 80%인 업종에서 연매출이 1,000만원일 경우 800만원은 영수증이 없어도 경비로 인정하고 나머지 200만원에 대해 세금을 물게 한다. 자연히 경비율이 높아지면 내는 세금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국세청은 매년 3월 업종별 경비율을 정해 고시하는데 올해는 일반게임장 등 156개 업종의 기준경비율을 내렸고(세금 증가) 운수 등 85개 업종에 대해서는 경비율을 인상(세금 감소)했다. 문제는 국세청이 경비율 제도 전반을 손질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홍 교수는 “국세청이 ‘기준경비율심의회의’를 열고 있기는 하지만 막상 참석해보면 정해진 안(案)대로 30분 만에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현재 경비율 제도 안에서는 현금거래분을 신고할 유인이 거의 없는데도 이를 해결할 의지를 보이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 현직 세무사는 “우리 헌법은 조세가 법률에 입각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청(廳) 단위 기관에서 매년 자의적으로 세금을 주무르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사업자의 경비산정이 불투명한 점을 악용해 세금을 탈루하는 사건도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국세청이 지난 2월 국내 약 4,300명의 프리랜서(인적용역사업자)들에게 5년 치 경비 사용내역을 모두 소명하라고 요구한 일명 ‘Y 세무사 스캔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서울 봉천동에서 회계사무소를 운영한 Y 세무사는 2009년부터 연매출 7,500만원 이상 프리랜서들에게 접근해 경비를 과다계상하는 방식으로 기장을 허위작성해 세금을 환급받을 수 있도록 했다. 접대비나 출장비 등을 부풀려 신고한 뒤 그만큼 세금을 돌려받는 식이다. 국세청에 적발된 프리랜서들은 보험설계사, 자동차 영업사원, 학원 강사 등으로 이들은 비용 사용내역을 소명하지 못하면 많게는 수억원의 가산세를 물어야 할 처지에 몰렸다. 이들은 Y 세무사의 부적절한 경비처리를 인지하지 못했고 국세청 역시 관리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탈세범’이 아니라 ‘피해자’라며 ‘전국 프리랜서 세무사기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구제활동을 벌이고 있다.
보험설계사 장은숙(가명)씨는 “고객관리를 위해 간단한 화장품 등을 살 때가 많은데 현금으로 결제했을 경우 비용을 증빙할 길이 없고 만약 카드로 구매했어도 내가 쓸 용도인지 선물용인지 증명할 길은 사실상 없어 현 제도에 허점이 많다”며 “걸린 사람만 재수 없는 ‘복불복’ 조세행정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탐사기획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