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치동에 사는 주부 김민희(가명)씨는 최근 독서컨설팅 학원에 중학교 3학년인 딸을 보내기로 했다. 올 초부터 고등학교 수학·과학 선행학습을 시키다가 수능 전형이 절대평가로 바뀐다는 뉴스를 보고 마음을 바꿨다. 김씨는 “수능이 절대평가로 바뀌면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합격을 장담하기 어려울 것 같다”며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 대비해 체계적인 독서지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듣고 등록했는데 진로를 컨설팅해주는 학원도 별도로 등록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수능 절대평가 도입 등을 공식화화면서 학교 현장에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현재 중학교 3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한 2021학년도 수능제도 개편 방향에 기존의 영어 외에 국어와 수학 등의 과목도 절대평가 전환이 유력시되며 정시 전형의 동점자 폭증으로 이른바 ‘인(in)서울’ 입시에서 역대 유례없는 치열한 눈치싸움이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수능 절대평가가 도입되면 지금까지 ‘인서울’ 안정권으로 평가받는 전과목 평균 2등급 성적을 받아도 합격을 장담할 수 없는 현상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 섞인 관측도 제기된다.
29일 종로학원하늘교육에 따르면 9등급 상대평가 방식인 2016학년도 수능 성적을 절대평가로 전환한 결과 수능 전과목 2등급을 받은 수험생이 10만2,851명(누적비율 19.7%)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 시험에서 평균 2등급 이상을 받은 학생은 3만3,308명(누적비율 6.4%)에 불과했다. 서울 소재 대학 입학정원이 수시와 정시를 합쳐도 약 7만명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3만명 이상의 낙오자가 예정돼 있는 셈이다.
수도권으로 범위를 넓혀도 경쟁이 치열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전까지는 수도권 대학에 들어가려면 평균 3등급을 받을 경우(상위 18%) 커트라인 안으로 무난히 들어섰지만 절대평가 방식에서는 해당 점수대 학생이 무려 36.6%에 이를 것으로 보여 ‘평균 3등급 수도권 안전’ 공식도 깨질 가능성이 높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절대평가처럼 같은 등급이 동점 처리되면 대학에서 가중치를 둬도 아무 변별력이 없다”며 “같은 점수여도 3만명 이상의 낙오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돼 정시로 들어가기 위한 눈치싸움이 어느 때보다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 현장 역시 수능 절대평가에 이어 내신 절대평가가 동시에 도입된다는 이야기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 교육공약인 ‘고교학점제’가 학교 현장에 뿌리내리려면 내신 절대평가는 필수다. 일부 시도에서 시범 운영하는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대학처럼 원하는 강좌를 신청해 듣고 졸업학점을 딸 수 있게 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자유롭게 듣는 것은 지금의 9등급 상대평가 제도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본인이 원하는 강좌 수강인원이 한자릿수에 불과하면 좋은 등급을 받는 학생은 1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능과 내신 모두 절대평가가 도입되면 대학 입장에서 학생 선발 시 변별력을 확보할 수단이 사실상 사라지게 되는 문제도 남는다.
경기도 안산에 재직 중인 박모 교사는 “가뜩이나 내신 점수에 민감한 학부모들이 자녀들의 점수 갖고 항의가 많은데 절대평가가 되면 최대한 좋은 점수를 주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일반고 역시 절대평가 기준 1등급에 해당하는 학생이 70%를 넘어서는 외고처럼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시전형이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워지면서 예비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생과 학부모들은 일찌감치 학생부종합전형 등 내신에 ‘올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대치동 등 서울 대표 학원가에서는 지난 정부부터 내신과 학생부를 전문적으로 관리해주는 소규모 보습학원이 급성장했는데 이러한 경향이 수능 기피 증세로 더욱 확산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대치동의 A학원 원장은 “학교별로 수년 치 기출문제를 분석해 대비해주는 수업에 대한 수요가 지난 몇 년간 급증했다”며 “예비 고등학생 역시 기존에는 수능 위주로 선행학습을 했지만 이제 고등학교 내신을 미리 대비하는 과정을 학부모들이 요구해 올여름부터 개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절대평가 전환으로 수능이 사실상 자격고시화되면서 사교육 부담 경감 등을 이유로 반기는 학부모도 적지 않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관계자는 “현 수능제도는 소수점 단위로 점수경쟁이 이뤄지는 상황인데다 최상위권 대학이 요구하는 수능 최저학력 기준도 상당히 높아 학생들의 부담이 컸다”며 “절대평가가 도입되면 수능의 영향력이 낮아져 학생들이 온전히 학생부 관리와 학교생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용·신다은기자 yong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