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미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은 기존 경제이론과 전혀 다른 논문을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1946년부터 1970년까지 30개 국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를 바탕으로 소득이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행복도가 그에 비례해 높아지지 않는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국민복지 수준을 높이려면 소득을 늘려야 한다는 일반적인 경제상식과는 반대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학자들은 이를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 Paradox)’이라고 불렀다.
이스털린의 연구는 경제성장이 반드시 인류의 행복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공감대를 확산시켰고 이는 국내총생산(GDP) 지표의 신뢰성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이후 GDP가 삶의 질을 평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연구가 잇따랐다. 이런 문제점이 결정적으로 부각된 것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때다. 금융위기 직전 부동산 거품이 심각한 상태였음에도 지표상으로는 경제가 계속 발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경제위기의 신호를 전혀 주지 못했다. 이로 인해 GDP 대안지표 개발이 활기를 띠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2008년부터 1년여의 작업 끝에 ‘행복GDP’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보건과 교육, 사회적 연계, 환경, 질병 등 8개 항목을 기초로 새 지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유엔이 평균수명과 문맹률 등을 토대로 발표하는 인간개발지수(HDI)도 대안지표 가운데 하나다.
국내에서도 GDP 대안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그동안 경제성장이라는 하나의 지표에 매달려 국정 방향을 잘못 이끌어왔다는 데 대한 반성이 일고 있는 것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4월 한 국제콘퍼런스에서 “GDP는 새로운 경제활동을 반영하지 못하는 만큼 삶의 질을 균형 있게 측정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최근 “국정운영의 중심을 삶의 질에 둘 필요가 있다”며 “부탄식 국민행복지수를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개발연대식 국정운영과는 다른 방향을 추구하고 있는 새 정부가 과연 새로운 지수 개발을 통해 국민 행복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오철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