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라이프

['화보같은 풍경' 남아공]금가루 수놓은 골든마일 해변...파도따라 낭만이 넘실

■더반

햇살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6㎞ 해변

3m 파도 즐기려는 서퍼들 발길 이어져

열대어서 상어까지 阿최대 해양공원

전통공연·사파리 체험 '페줄루'도 명물

■케이프타운

'도시 위 거대한 책상' 테이블마운틴

360도 회전 케이블카로 정상 오르면

끝없이 펼쳐진 아프리카 대륙 한눈에

희망곶 트레킹·와인 양조장서 시음도

더반의 골든 마일 해변 전경. 햇볕을 받으면 모래사장이 마치 금가루를 수놓은 듯해 ‘골든’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정순구기자.더반의 골든 마일 해변 전경. 햇볕을 받으면 모래사장이 마치 금가루를 수놓은 듯해 ‘골든’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정순구기자.


후유증은 감수해야 한다. 다양한 나라를 여행해봤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만큼 그 여운이 길었던 곳은 많지 않았다. 남아공 사람들 특유의 자유로움과 여유, 어디를 가도 눈앞에 펼쳐지는 믿기 힘든 대자연의 경관이 잊히지 않는다.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해 첫 목적지였던 남아공 더반 국제공항까지 약 24시간. 꼬박 하루를 가야 도착할 수 있는 먼 나라지만 뒤따르는 보상은 더없이 달콤했다. 우리에게는 2010년 열린 월드컵 정도로만 알려져 있는 남아공. 그곳에는 발길 닿는 데마다 숨은 매력이 무궁무진했다.




세계 3대 서핑 명소로 꼽히는 더반의 골든 마일 해변에서 한 서퍼가 서핑을 즐기러 바다로 향하고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에도 3m는 족히 넘는 파도가 넘실대는 덕분에 서퍼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다./정순구기자.세계 3대 서핑 명소로 꼽히는 더반의 골든 마일 해변에서 한 서퍼가 서핑을 즐기러 바다로 향하고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에도 3m는 족히 넘는 파도가 넘실대는 덕분에 서퍼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다./정순구기자.


◇서퍼들의 천국=‘무지개 나라’로 불리는 남아공으로의 여행은 시작이 그리 좋지는 못했다.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해 홍콩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를 거쳐 더반으로 가는 일정은 홍콩에서부터 어긋났다. 비행기가 지연되면서 홍콩에서 요하네스버그로 가는 경유기를 놓치고 말았다. 3시간 넘는 기다림 끝에 탑승한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행 비행기. 11시간의 비행 후 다시 더반행 여객기로 갈아타 6시간을 더 가야 한다. 경유 시간을 제외해도 총 20시간이 넘게 걸리는 셈이다.

만 하루가 넘게 걸려 도착한 더반. 365일 중 흐린 날이 거의 없다는 이곳에는 폭풍우가 치고 있었다. 비행의 피로에 나쁜 날씨까지 겹치면서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짜증 가득한 마음은 딱 첫날까지였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더반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의 맑은 하늘을 보여줬고 숙소 창문 밖으로 보이는 경관에 전날의 기분은 깨끗이 씻겨버렸다.

더반을 찾은 관광객들은 대부분 골든 마일 해변에 줄지어 있는 호텔에서 머문다. 세계 3대 서핑 명소로 서퍼들에게는 천국이라고 불리는 해변이다. 왜 그럴까. 서핑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파도가 첫번째 이유다. 바람이 전혀 없는 날에도 해변 바로 앞까지 높은 파도가 치기 때문에 하루 종일 서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보고 있으면 신기하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인데 해변 바로 앞에는 3m가 넘는 파도가 넘실댄다.

아름다운 풍경도 한 몫 보탠다. ‘골든’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햇볕을 받은 모래사장은 마치 금가루를 수놓은 듯하다. 더반에 머문 5일 동안 해변을 멍하니 바라보며 흘린 시간이 얼마인지 계산이 되지 않을 정도다. 이른 오전 일출 시간에 맞춰 서핑을 즐기는 서퍼들과 금빛으로 변해가는 해변의 모습이 어우러지면 눈을 떼기가 힘들다.

서핑 말고도 해변을 즐길 방법은 많다. 우리 돈 3,000원 정도면 자전거를 한 시간 빌려 탈 수 있다. 해변 바로 옆에 조성된 길을 따라 페달을 밟다 보면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에 웃음이 새어 나온다. 먹을거리와 볼거리도 풍성하다. 6㎞ 길이의 해변에는 각종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이 자연스럽게 들어서 있다. 경관을 해치지 않는 정도로 마련된 야외 테이블에서 햄버거와 맥주 한 잔을 함께 하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골든 마일 해변 끝에 위치한 ‘우샤카 마린월드’는 더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다. 아프리카 최대 규모의 해양 테마공원으로 열대어부터 돌고래·바다표범은 물론 수십 종류의 상어까지 다양한 해양생물을 만나볼 수 있다.

골든 마일에서 차를 타고 북서쪽으로 40분 정도를 가면 나오는 페줄루 사파리 공원 역시 명물이다. ‘페’는 남아공 전통어로 최고를, ‘줄루’는 남아공 최대의 민속 부족을 뜻한다. 길이 3~4m는 족히 넘는 악어들이 우글우글한 악어 농장과 줄루족의 전통 공연, 사파리 투어까지 체험이 가능하다. 운이 좋으면 줄루족 공연을 보러 온 남아공 현지 초등학생들과도 만날 수 있다. 공원을 방문했던 날 마침 초등학교에서 단체로 체험학습을 왔다. 남아공 아이들은 카메라만 가져다 대면 각종 자세를 취하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하기 바쁘다. 본인이 찍힌 사진을 확인하는 법은 없다. 그저 찍히는 것 자체가 즐거울 뿐이다. 아이들과 함께 공연을 감상하는 것의 좋은 점은 또 있다. 본인들끼리 신이 나서 박수를 치며 한바탕 춤을 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속에 어울려 있으면 남아공 사람들의 여유와 밝음, 행복이 밀려들어 온다.

테이블마운틴 정상에서 바라본 케이프타운 도심의 전경. 도시 전체가 관광지라 불리는 케이프타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즐길 수 있다./정순구기자.테이블마운틴 정상에서 바라본 케이프타운 도심의 전경. 도시 전체가 관광지라 불리는 케이프타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즐길 수 있다./정순구기자.


케이프타운의 또 다른 즐길거리인 선셋크루즈에서 바라본 테이블마운틴. 일몰에 맞춰 서서히 붉게 물드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정순구기자.케이프타운의 또 다른 즐길거리인 선셋크루즈에서 바라본 테이블마운틴. 일몰에 맞춰 서서히 붉게 물드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정순구기자.


◇셔터만 누르면 화보가 되는 곳=더반을 뒤로 하고 향한 곳은 아프리카 대륙 남서쪽 끝에 위치한 케이프타운. 남아공의 입법수도이자 전 세계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도시다. 어딜 봐도 화보와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덕분에 도시 전체가 커다란 액자 속 그림과 같다. 지난 2014년 뉴욕타임스(NYT)가 발표한 ‘세계의 가볼 만한 곳 52개 여행지’ 중 1위로 선정된 배경이다.


백미(白眉)를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테이블마운틴’을 선택하겠다. 해발 1,086m의 고원으로 그 모습은 이름 그대로다. 도시 위에 놓인 큰 책상과 같다. 꼭대기에 동서로 3.2㎞의 평평한 지형이 펼쳐져 있어서 그렇게 보인다. 축구장의 15배 크기라 200㎞ 밖에서도 알아볼 수 있다. 과거에는 아프리카 대륙을 항해하는 선원들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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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프타운의 여러 볼거리 중에서도 이곳이 으뜸인 이유는 정상 위 풍경 때문이다. 정상까지는 케이블카를 타고 5분이면 갈 수 있다. 그전부터 기대감은 가득했다. 케이블카 탑승 장소까지 차로 이동하면서 내려다보는 케이프타운 도심의 모습이 장관이라서다. 360도로 회전하며 올라가는 대형 케이블카 역시 기대를 높이는 이유 중 하나다. 기대가 크면 보통은 실망도 큰 법. 테이블마운틴은 이런 ‘보통’의 생각을 모두 뒤엎는다. 정상에 도착하자 절로 입이 벌어졌다. 어디가 끝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아프리카 대륙과 케이프타운 도심이 한눈에 펼쳐지고 대서양의 푸른 바다는 햇빛을 받아 노랗게 물들어 있다. 아무 곳에서나 셔터를 누르면 곧바로 화보가 될 정도다. 바람이 심하게 불면 케이블카 운행은 중단된다. 일 년 중 정상에 올라 절경을 볼 수 있는 기간은 절반 정도. 누구나 볼 수 없는 경치는 그래서 더 소중하고 아름답다.

최대 상업지구인 워터프런트는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쇼핑센터와 레스토랑이 밀집해 있고 바로 옆에 있는 항구에서 크루즈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 일몰도 감상할 수 있다. 일명 선셋 크루즈라고 불리는 체험이다. 가격은 우리나라 돈으로 3만원 안팎. 아깝다거나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 온 세상이 붉게 물들어가는 장면을 보는 것은 쉽게 하기 힘든 경험이다.

시내에서 차로 약 1시간 정도 달리면 케이프타운을 즐길 수 있는 선택지가 더 넓어진다. 볼더스 해변에서 아프리카 펭귄을 보거나 국내에는 희망봉으로 알려져 있는 희망곶(Cape of Good Hope)을 방문해 트레킹을 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술을 좋아하는 편이라면 주변 와이너리(와인 양조장)에서 와인 시음을 해보라고 추천하겠다.

“안 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사람은 없습니다.” 여행 첫날 남아공 관광청 직원이 강조했던 말이다. 궂은 날씨 탓에 전혀 이해되지 않았던 그 말을 여행 마지막 날에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글·사진(남아프리카공화국)=정순구기자 soon9@sedaily.com

케이프타운 도심에서 차로 40여분을 달려 도착한 ‘드모르간존(DeMorgenzon)’ 와이너리의 풍경./정순구기자.케이프타운 도심에서 차로 40여분을 달려 도착한 ‘드모르간존(DeMorgenzon)’ 와이너리의 풍경./정순구기자.


◇무지개 나라, 남아공=여행에 앞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이라는 나라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백인과 비(非)백인 사이의 인종 차별이 법적으로 존재하던 곳이다. 전체 인구의 약 16%에 불과한 백인이 나머지 다른 인종을 정치·사회·경제적으로 차별해온 것이다. 지난 1993년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인종차별법이 폐지될 때까지 백인이 아닌 다른 인종은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다. 이 상황을 타개한 것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넬슨 만델라다. 저항 운동을 펼치다 1964년 종신형을 선고받고 무려 27년 동안의 수감 생활을 견뎌낸 인물이다. 1990년 풀려난 후 1993년 아파르트헤이트가 철폐되는 데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 같은 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1년 후에는 남아공 최초로 흑인이 참여한 자유 총선거에서 첫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지금도 남아공 곳곳에는 넬슨 만델라의 업적을 기리는 동상이나 기념비 등이 세워져 있고 케이프타운의 시청 외벽에는 대형 모자이크 그림까지 그려져 있다.

아파르트헤이트가 철폐된 후 남아공은 다양한 색의 ‘무지개’가 국가의 상징으로 사용될 만큼 여러 인종이 섞여 사는 곳으로 변했다. 11개나 되는 공식 언어만 봐도 얼마나 많은 민족이 공존하는지 알 수 있다. 남아공 국가에는 이 11개 언어가 모두 포함돼 있다. 아픈 역사 속 상처와 용서·화합이 뒤섞여 있는 남아공의 현재 모습은 비 온 뒤 모습을 드러낸 무지개처럼 아름답다.

정순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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