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기후협정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판 깨기’로 삐걱거리자 중국이 기후변화 어젠다를 차지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자유무역에 이어 파리협정이라는 글로벌 어젠다를 끌어안으면서 국제질서를 주도하는 선도국으로 부상하려는 야심을 드러낸 것이다.
5월31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파리협정에 관한 결정을 목요일(1일) 오후3시(한국시각 2일 오전4시)에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발표하겠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고 밝혔다.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협정에서 탈퇴하기로 이미 마음을 굳혔다며 이날 트윗은 그가 기후변화와 같은 국제사회의 관심사보다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국내 문제 해결에 힘을 쏟겠다는 신호라고 풀이했다.
미국의 불참 선언이 임박하면서 국제사회에 엄청난 파문이 예고되는 가운데 중국은 미국의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유럽 순방 중인 중국의 ‘넘버2’ 리커창 총리는 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중국·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 참석해 EU 회원국 정상들과 파리협정 이행방안을 논의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입수한 초안에 따르면 중국과 EU는 이 자리에서 파리협정을 “역사적 성과물”이자 “되돌릴 수 없는 약속”이라고 평가하며 미국의 탈퇴와 상관없이 협정을 이행하겠다는 선언을 공식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올해 안에 EU가 중국에 1,000만유로(약 125억9,000만원)을 지원해 중국이 자체 탄소배출권 거래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돕고 EU와 중국 간 시스템을 연동한다는 실무협력 계획도 선언문에 담길 것으로 전망된다.
자유무역과 기후변화 등 국제 이슈를 주도하겠다는 중국의 야심을 바라보는 EU 내 분위기도 달라졌다. 지난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및 주요7개국(G7) 정상회의를 거치며 미국과의 신뢰에 금이 간 상황에서 날아온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가 사실상 ‘결별 선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EU도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미국을 대신해 파리협정을 수호할 새로운 동맹 파트너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한편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 공식 발표는 국제사회는 물론 미국 내에서도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제2의 온실가스 배출대국인 미국이 협정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실효성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는데다 파리협정 ‘탈퇴 도미노’나 부실이행이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기업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파리협정 탈퇴 움직임에 강력히 반발하며 막판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경제자문위원회와 제조업일자리위원회 자문위원을 맡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회장은 이날 “파리협정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는 모르지만 나는 자문위원회에서 모든 경로를 통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다”며 “파리협정에서 탈퇴한다면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사임 의사를 밝혔다.
제이미 다이언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와 제프리 이멀트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 등 미국 10대 기업 CEO들은 “파리협정이 미국 제조업과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의 광고를 이날부터 내보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