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파리기후협정 탈퇴 선언과 동시에 각국에 재협상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전 세계가 동참하는 통합 어젠다로 각광받아 온 기후협약 이슈는 또다시 주요국 간 주도권 싸움과 분열의 장으로 변모하게 됐다.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국들이 “재협상은 없다”고 못을 박았으며 세계 온실가스 배출 1·3위인 중국과 인도도 기후협정 사수 입장을 거듭 밝히는 등 참가국들은 일단 미국의 탈퇴에도 협정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하지만 세계 최강국이자 2위 배출국인 미국이 “기후변화는 거짓”이라며 협정에 등을 돌리고 나선 가운데 개도국들의 이행 여부가 불투명해지는 등 협정의 실효성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각에서는 190여개국이 합의한 전 지구적 협정에서 미국이 발을 빼며 반사이득을 얻는 데 대해 탄소세 부과 등 제재 논의가 탄력을 받으면서 미국을 겨냥한 무역전쟁이 촉발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발효된 파리협정은 국제사회가 처음 기후변화에 공동 대응하기로 한 1997년 ‘교토의정서’가 선진국에 대해서만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지운 것에서 한 발 나아가 개도국의 동참까지 이끄는 한편 선진국의 개도국 지원도 명문화해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1년 교토의정서에서 탈퇴하며 협약을 실패로 이끌었던 미국이 이번에도 “미국 이익에 반한다”며 7개월 만에 협정 탈퇴를 선언해 가뜩이나 구속력이 제한적인 파리협정은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됐다. 2020년 만료될 교토의정서에서 한차례 발을 빼 국제적 비판을 샀던 미국이 ‘포스트 교토체제’까지 흔들고 있는 셈이다.
미국은 앞서 협약 체결 당시 202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2005년 대비 26∼28% 줄이고 2020년까지 개도국에 30억달러를 지원하기로 약속하고 지금까지 10억달러를 내놨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같은 약속 이행을 이날 즉각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중국과 유럽연합(EU) 등이 온실가스 감축에 리더십을 발휘하려는 의지를 확인하면서 미국의 이탈에도 도미노 탈퇴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개도국들의 협정 이행 노력은 느슨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미국의 선진기술과 자금지원이 중단되면 개도국에 협정 이행을 촉구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트럼프 행정부가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이용해 개별 국가들에 대한 재협상 압박을 가하면서 협정에 균열을 일으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AP통신은 기후변화 과학자들을 인용해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로 매년 이산화탄소가 최대 30억톤가량 추가 배출될 것”이라며 미국이 재생에너지 확대를 주저하고 관련 연구비를 삭감해 세계적으로 탄소 배출 억제에 동참하지 않는 나라가 증가하면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3,500억톤가량 추가돼 지구 온도를 0.25도가량 높이는 결과를 부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게다가 세계 주요국들 가운데 미국만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벗어던지며 불공정 경쟁에 나설 경우 무역상대국들이 탄소세 부과 등 징벌적 조치를 취해 무역전쟁이 발발할 위험도 부상하고 있다. CNN머니는 미 수출 기업들이 파리협정에서 비켜나 제조비를 낮춘다면 경쟁국이 미국산 제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전망했다. 이미 애플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유니레버, 갭 등 미국 25개 주요 기업은 “파리협약에서 탈퇴하면 우리가 보복조처에 노출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 때문에 캘리포니아와 뉴욕 등 미국 내 30여개 주정부와 상당수 대기업이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과는 무관하게 자체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밝히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파리협정 탈퇴로 전 세계 환경문제에 대한 시대적 흐름을 역행해 글로벌 경제 및 외교·안보 분야의 리더십도 악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협정 재협상을 거론한 데 대해 “분명히 말하건대 재협상은 없다”고 단번에 일축했다. /뉴욕=손철 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