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일자리 정책, 사회적 합의 필요

채수찬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서경펠로

비정규직 철폐 추구하는 정부

실업률 상승은 피할 수 없어

단기 목표에만 매달리지 말고

장기적 격차해소 정책 마련을

채수찬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서경펠로채수찬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서경펠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 특히 같은 일에 대한 임금의 차이는 없어져야 한다. 대기업들이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저임금 유지의 수단으로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것도 고쳐져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후보 당시 공약도 비정규직 격차 해소를 담고 있다.

그런데 새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공약을 넘어 비정규직 철폐라는 구호를 내세워 일자리 정책의 한 축으로 얘기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결과적으로 실업률이 높아지는 정책이며 우리 사회가 그동안 가던 길에서 방향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지율 40%대로 집권한 소수 정부가 충분한 정치적 지지 확보 없이 밀고 나가기에는 무리가 있다. 새 정부 일자리 정책의 또 하나의 축인 공공부문 일자리 늘리기도 공약사항이기는 하나 보다 넓은 기반의 정치적 합의가 필요하다. 공공부문에서 서비스 수요가 늘어난 분야의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국민의 세금으로 공공부문 전체 일자리를 늘리는 정책 방향은 분명한 국민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


지금 온 세계는 빠른 기술혁신과 세계화의 진행에서 오는 소득 양극화를 해결하지 못해 정치적 혼란에 빠져 있다. 이에 대응하는 정책 기조에는 미국형과 유럽형이 있다. 미국형은 고용과 해고를 자유롭게 해 실업률을 최소화하는 대신 기술에 따른 임금 격차를 용인하는 것이라면 유럽형은 노동조합에 힘을 실어 고용 안정성을 주고 임금 격차를 줄이는 대신 높은 실업급여를 지급하고 높은 실업률을 감수하는 것이다. 미국형은 미국과 영국 등이 취해온 정책 방향이고 유럽형은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취해온 정책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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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어떤가. 그동안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공존하는 절충형을 취해 낮은 실업률을 유지해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정년까지의 고용 안정성 여부다. 그런데 새 정부는 유럽형으로의 방향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이는 높은 실업률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선택이다. 유럽의 경우에는 미국보다 노동시간이 짧은 데서 보듯이 높은 소득보다 여가를 중시하는 사회적 선택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고령층에 일하는 사람이 많고 영세 자영업자가 많은 것으로 보아 여가보다는 더 일해 소득을 높이고자 하는 사회적 선택이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새 정부의 정책에 의해 비정규직이 줄어들면서 실업률이 오르고 영세 자영업자가 늘어나면 사회 전체의 행복 수준은 떨어질 수 있다. 일자리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이유다.

어떤 사람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이 실업률을 높인다는 가정이 잘못됐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런데 이는 가정이 아니다. 노동시장이 유연하지 못하면 고용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것은 어떤 강력한 정부도 막아내지 못한다. 경제학에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제학은 또한 공짜가 없다는 것을 가르친다. 임금도 오르고 임금 격차도 줄어들고 게다가 일자리도 늘어나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단기간에 이런 목표들을 한꺼번에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정책을 하는 사람들은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정책을 하다 보면 주변에서 왜 경제 논리로만 문제를 보느냐는 항의를 듣는 경우가 많다. 경제 논리로만 보는 게 아니고 경제 원칙에서 벗어난 정책을 추진하면 목표한 성과를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장기적으로 임금도 오르고 임금 격차도 줄어들고 일자리도 늘어나게 하는 정책 방향을 택하는 일이다. 이는 노동 정책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노동 정책은 필수다.

채수찬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서경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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