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미래창조과학부의 업무보고를 더 이상 받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가계 통신비 부담 완화 대책’을 내놓으라는 ‘최후통첩’이다. 신 정권과 구 정권이 ‘가계 통신비 인하’라는 외나무다리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샅바 싸움을 하고 있던 상황에서 국정기획위가 ‘카운터 블로’를 날린 격이다.
국정기획위가 강한 어조로 미래부를 밀어붙이면서 대통령 선거의 단골 공약이었지만 한 번도 지켜진 적이 없던 ‘가계 통신비 인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업계에서는 가계 통신비 불똥이 신임 미래부 장관 인선에까지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냐고 보고 있다. 또 미래부가 버티기를 계속할 경우 국정기획위가 ‘통신비 원가 공개’라는 이통사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선까지 나갈지도 큰 관심이다.
6일 국정기획위가 긴급 브리핑을 통해 미래부를 엄중 경고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이개호 국정기획위 경제2분과 위원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기본료 폐지를 포함한 가계 통신비 절감 방안은 전체적 구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굉장히 중요한 이 정부의 핵심 공약”이라고 전제한 후 “미래부가 적극적인 자세,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주길 기대했는데 지나칠 정도로 소극적이고 특정 이해관계자만 대변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편향된 자세만 보였다”고 강하게 질책했다. 이어 “그대로 논의를 이어가는 게 의미 없다고 생각해 내일 전체회의를 열고 어떻게 대응해나갈지 의견을 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 위원장은 기본 통신료 폐지 외에 플러스알파가 있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그는 “2G·3G에만 있는 기본료 폐지는 어렵지 않고 간단하다”고 전제한 후 “그걸 포함한 전체적인 가계 통신비 인하 의지가 구현돼야 하는데 미래부가 해답은 안 내고 이리저리 빼고 있지만, 기본료 폐지 외에 추가적인 인하 대책을 가져와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했다.
국정기획위의 강한 압박에 미래부와 이통사가 더 이상 버티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미래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내부에서 고민하고 있다”며 “통신비 인하와 관련한 미래부의 방안이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것인 만큼 다른 방안을 선보여야 할 듯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질문엔 답변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결국 뭔가를 내놓을 수밖에 없지 않냐”고 반문했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미래부나 이통사 입장에서는 어떤 카드도 먼저 내놓기가 부담스럽다”며 “결국 미래부 장관이 누가 오느냐에 따라 통신요금 문제 해법이 결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통사가 ‘기본료 폐지를 포함해 어떤 요금 인하 방안도 힘들다’는 입장을 강하게 고수하고 있지만 조만간 타협안을 내놓을 것으로 본다. 저소득층 등 일부 계층에 대한 기본료 폐지, 데이터 차등요금제, 알뜰폰 도매대가 인하를 통한 저소득층 알뜰폰 지원 등 영업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을 두고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에서는 통신비 인하를 놓고 갈등이 깊어지면서 국정기획위가 ‘통신요금 원가 공개’라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는 것이 아니냐고 조심스럽게 관측한다. 이통사들은 통신요금에 비용회수, 미래투자, 수익, 이용자의 수용도 등이 종합적으로 반영돼 있고 설비구축부터 철수까지의 비용뿐만 아니라 망 고도화에 필요한 비용 등을 장기간에 걸쳐 회수하도록 설계돼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국정기획위는 “초기 투자비를 이미 회수하고 통신요금 인하 여력이 충분하다”고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양철민기자·류호기자 chop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