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국정기획위는 국민연금 적립금 약 565조원 중 2조원가량을 17개 시도 광역자치단체 산하에 만들어질 ‘사회서비스공단’에 간접 투자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가 특수채권(특정 용도로 발행하는 국채)을 발행하면 국민연금이 사들이고 마련된 재원을 공단의 설립·운영에 활용하는 구조다. 공단은 민간에 맡겨진 사회 서비스의 40%가량을 흡수하며 이 과정에서 약 30만개의 공공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중 “보육·임대주택·요양 분야 등을 위한 국공채를 발행하면 국민연금이 매입하겠다”는 발언을 현실화하는 셈이다.
문제는 수익성이다. 물론 공단에서 나름의 사업을 추진해 수익을 올릴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공공부문 채용을 늘리는 등 정부 돈을 쓰는 곳에 국민연금이 투자한다는 것으로 수익률이 나올지 미지수다. 국민 노후자금으로 공공일자리를 늘리는 게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절차적 정당성도 문제다. 현재 신임 복지부 장관도 지명이 안 된데다 국민연금 이사장 역시 공석이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문제가 된 것은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정권 상부의 일방적인 지시를 따랐기 때문인데 이번 역시 국민연금 운용을 책임질 사람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방향을 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연금은 워낙 기금 적립 규모가 커 역대 정부 정책의 전위부대로 활용돼왔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김영삼 정부 때 보수정권이 국민연금을 동원해 사회간접자본(SOC) 등에 투자하는 것을 진보 측인 당시 야당이 강력히 반대했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진보 측이 여당이 되자 국민연금을 활용하겠다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 1993년 김영삼 정부는 국민연금 등을 공공자금 예탁금 명목으로 쓸 수 있게 ‘공공자금관리기금법’을 제정하고 이듬해부터 1998년까지 5년간 약 19조원의 적립금을 적은 이자만 주고 SOC 투자 등에 활용했다. “국민 노후자금을 정권 쌈짓돈으로 쓰고 있다”는 야당 반발이 커졌고 1999년 김대중 정부는 공자기금법을 개정해 무분별한 전용을 막았다.
참여정부 때인 2004년 11월에는 재정경제부가 ‘한국형 뉴딜’과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맞선 한국기업 경영권 방어에 국민연금을 활용하겠다고 밝히자 고(故) 김근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공개적으로 반발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은 복지부 홈페이지에서 “콩 볶아 먹다 가마솥 깨뜨린다는 말이 있다”며 “국민연금을 잘못 사용하면 제도 자체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고 각을 세웠다. 이명박 정부 때는 녹색 산업에 투자하는 신성장동력펀드에 투자했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