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이 처음 세상에 나온 지 꼭 10년이 됐고 기념으로 ‘100쇄 기념 아트에디션’이 출간됐다.
7일 김 작가는 서울 청운문학도서관에서 열린 ‘남한산성 100쇄 기념 아트에디션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이 글은 말과 길에 대한 얘기일 뿐 이 소설에서 역사 담론을 만들어낼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데 등장인물에 대한 평가를 시도하려는 생각도 전혀 없고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조건들, 시대, 말, 관념, 인간의 야만성 등과 인간의 삶이 빚어내는 환경을 그리고 싶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 자리에서 김 작가는 지금까지도 관념에 사로잡힌 한국 사회를 비판했다. 그는 “소설에서 가장 나를 괴롭힌 것이 언어와 관념의 문제인데 이것은 지금 우리 시대까지 계속되고 있다”며 “조선시대 못지않은 관념의 늪에 빠져 있다”고 개탄했다. 특히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주적 논란에 대해 “‘북한이 주적이냐 아니냐, 국가냐 아니냐’는 것은 썩어빠진 질문, 관념에 빠진 질문”이라며 “북한은 군사적 실체고 주민을 장악한 정치적 실체이며 우리에게는 싸움의 대상이자 대화의 대상인데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했던 것과 다를 바 없는 무지하고 몽매한 관념이 여전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이런 질문을 벗어나야 현실이 보인다”며 “정의니 불의니 도덕이니 하는 이런 모호한 관념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면서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남아 있다”고 개탄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둘러싼 동북아 3개국의 긴장 상황에 대한 해법을 묻는 질문에는 “이런 데는 정돈된 견해가 없다”면서도 “약소국가로 강대국 틈에 끼어 살아가야 하는 것, 그것은 우리의 운명”이라며 운을 뗐다. 김 작가는 “병자호란 때 항복하고 군사적·외교적 주권을 포기하고 여자들을 청나라에 바치고 200년 이상을 살았던 역사는 치욕스러운 역사지만 인간의 역사가 영광과 자존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사대를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조선시대의 사대라는 것은 약자가 강자들 틈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술로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올해 칠순을 맞은 김 작가는 앞으로 서너 권의 책을 더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 작가는 “역사나 시대의 무게를 벗어나 마음대로 글을 쓰고 싶다”며 “판타지라든지 상상의 세계로 끝없이 이야기를 끌고 나갈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