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중소·중견기업의 사업 참여 문턱을 낮추고 수출 애로를 해소하겠습니다. 둘째, 중소기업 역량별 맞춤 사업을 통해 수출 기업으로 안착하도록 하겠습니다. 셋째, 스타트업과 청년들이 수출 역군으로 성장하도록 지원하겠습니다.”
한 공공기관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있는 최고경영자(CEO) 인사말이다. 주요 사업 방향 네 가지 가운데 세 가지가 중소기업 활성화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의 KOTRA 얘기다.
KOTRA는 수십 년 동안 존치 논란 등이 있을 때마다 자신들의 존재 근거로 ‘중소기업 지원’을 내걸어왔다. 하지만 이번 정부조직 개편 과정에서 아이러니하게도 KOTRA는 신설될 중소벤처기업부로 이관되는 것을 반대했다. 국가정보원 보조 역할과 한국 직접투자 지원 등을 내세우며 ‘탈중소기업’ 이미지를 전파하는 데 안간힘을 썼다. 결국 조직개편안은 그들의 바람대로 산업부 잔류로 일단락됐다.
사실 중소업계는 이번 정부조직 개편에서 KOTRA를 모셔(?)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중소기업들의 수출 마케팅과 해외 진출 활성화를 위해서는 KOTRA가 가진 방대한 글로벌 네트워크와 경쟁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해외 조직망을 바탕으로 KOTRA는 지난 시기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1990년대 들어 국내 대기업들이 탄탄한 글로벌망을 갖추면서 대기업 부문에서 KOTRA의 설 자리는 없어진 지 오래다. 국민 세금인 국고보조금 3,018억원(2016년)으로 운영되는 KOTRA의 역량을 재벌 대기업 지원에 쓰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실상 KOTRA의 중소기업 수출지원 업무와 인력의 비중은 전체의 70%다. 사업비도 90% 이상이 중기 관련 수출지원 사업에 쓰인다. 그러나 이번 정부조직 개편 과정에서 드러났듯 KOTRA는 이중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KOTRA와 산업부는 기존 질서에 안주하고 싶어하는 ‘관성의 법칙’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비단 KOTRA뿐 아니다. 중소기업과 관련한 많은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공공기관이나 단체들이 중기부의 품에 들어오는 것을 꺼린다. 이는 근본적으로 대기업은 일류, 중소기업은 이류라는 그릇된 인식과 관행의 산물이 아닌가 싶다.
우리 산업과 사회는 4차 산업혁명 시대로 빠르게 접어들고 있지만 정작 정신과 문화는 3차 산업에 머물고 있다. 내일이면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지 꼭 한 달이다. 현 정부의 경제 키워드는 일자리 창출과 4차 산업혁명이고 공통 DNA는 중소기업이다. ‘중기천하지대본(中企天下之大本)’의 시대로 가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얼마나 절박하고 진정성 있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자문해볼 때다. /hanu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