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수은·산은·무보와 업무 겹치는데…출범 전부터 밥그릇 싸움

■ 해양선박공사 시작부터 파열음

금융위 "보조금 제재 당할 것"

해수부 "서비스업은 해당 안돼"

WTO 규정 위반에 다른 해석

"정책금융기관 효율 평가 와중에

"공사 설립은 신중해야" 지적도

“대통령이 ‘공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긴 안목으로 해양산업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공기업 형태로 가야 합니다.”(해양수산부)

“공기업으로 만들면 정부의 지원을 자백하는 꼴입니다. 세계 경쟁업체들이 줄소송을 걸 겁니다.”(금융위원회)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한국해양선박금융공사’ 설립을 두고 해양수산부와 금융위원회가 두 번째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지난해 국내 1위, 2위 해운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지원을 두고 입장이 첨예하게 갈렸다. 결국 대주주의 경영권 포기와 사재 출연 등 자구노력을 보인 현대상선은 재기의 발판을 얻었고 금융위와 각을 세웠던 한진해운은 공중분해됐다.

0815A08 중복되는 정책금융기관 역할 수정1





선박금융공사는 한진해운 사태가 마무리된 지 두 달여 지난 올해 1월 문 대통령이 유력 대선후보로서 부산을 찾으면서 수면 위로 올랐다. 문 대통령은 부산항만공사를 방문해 “해운항만산업을 살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면서 선박금융공사를 설립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지난해 한진해운 사태 이후 해운업 강화를 위해 한국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민간 금융기관의 출자를 받아 설립하기로 한 한국선박회사를 확대해 자본금 5조원 규모의 해양선박금융공사를 설립하겠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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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금융위, WTO 규정 위반 두고 다른 해석=공약은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대통령 공약을 정책으로 구현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금융위가 ‘공사’ 설립에 신중해야 한다는 보고를 한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는 특정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가 보조금을 주는 것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해양금융공사는 정부가 선박펀드 등을 통해 국내 해운사에 지원한 자금으로 국내 조선사에 선박을 발주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기업 설치에 관한 법률로 공사를 설립하면 공적자금 지원으로 지목돼 경쟁업체들이 WTO에 우리 정부와 해운·조선사를 제소할 수도 있다. 지난 2003년 산업은행이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를 지원했을 때 미국이 보조금으로 간주해 상계관세를 부과했고 WTO도 최종적으로 미국의 손을 들어줬다. 해수부는 이에 대해 “반대를 위한 논리”라고 강조했다. 중국과 일본·대만·유럽 등 주요 국가들 모두 공적자금을 통해 자국 해운사를 지원하고 있다. WTO도 제조업에 대한 보조금만 금지하고 있고 서비스업(해운업)은 별도의 제재가 없다.

비효율 평가 중에 또 금융공사 설립, 평가·토론 필요=금융위는 2013년에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선박금융공사 설립을 반대해 무산시켰다. 정책금융을 집행하는 공사가 더 생기면 정책금융기관 간의 업무가 중복되고 경쟁도 벌어져 비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어서다.

이미 해운과 조선업 등 수출산업 지원은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 자산관리공사(캠코) 등이 담당하고 있다. 한진해운 ‘트라우마’도 작용했다. 신보는 한진해운 지원으로 4,3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봤다. 금융위는 정책금융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기술보증기금과 신보의 통폐합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 탓에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수출지원 공공기관 심층평가’를 진행 중이다.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또 지원기관이 생기는 셈인데 전문가들은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남창우 KDI 연구위원은 “한진해운은 법원에 가서도 청산으로 결론 낼 만큼 망가져 있었다”며 “공사설립에 앞서 우리 미래를 위해 해운업에 지원할지 아니면 그 역량을 새로운 산업에 쏟을지부터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역에 필요한 공사 설립을 당연히 요구할 권리가 있다”며 “하지만 실제로 공기업이 만들어질 때는 연구용역과 전문가 토론 등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구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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