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통신요금 기본료 폐지’를 포함한 가계 통신비 인하를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정부가 받아갈 돈은 한 푼도 안 깎아주면서 통신사의 고통 분담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국정기획위에서 주장하는 높은 통신요금에는 주파수 할당 대가와 전파사용료 등 매년 이통3사가 정부에 납부하는 1조원이 넘는 준조세가 포함돼 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전파사용료 인하를 강하게 반대한다. 결국 정부는 이통사를 통해 소비자로부터 받는 2만원의 정부 몫은 그대로 두고 이통사의 몫만 깎으라고 압박하는 상황이다.
7일 최민희 국정기획위 경제2분과 위원은 “미래창조과학부가 이번주 금요일 오후까지 휴대폰 기본료 폐지 등 통신비 인하 공약에 대한 이행방안을 제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날 “미래부가 통신비 인하에 대한 진정성이 없다”며 업무보고를 중단하겠다고 최후통첩을 밝혔지만 ‘데드라인’을 한차례 연장한 셈이다. 이개호 경제2분과 위원장은 “김용수 미래부 2차관이 새로 임명됐는데 김 신임 차관이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을 잘 이해하고 있는 만큼 미래부가 새로운 안을 가져오길 기대한다”며 “이통사와 소비자단체 등 이해당사자를 직접 만나면서 의견수렴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정부가 주장하는 높은 통신요금에는 정부의 몫인 준조세가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미래부의 ‘2017년 사업설명’ 자료에 의하면 미래부는 방송통신발전기본법에 따라 올해 이통3사로부터 총 8,442억원을 주파수 할당 대가로 징수할 예정이다. 이중 3,797억원은 방송통신발전기금 몫이고 4,645억원은 정보통신진흥기금 몫이다.
이통3사의 준조세는 2011년 주파수 경매제도가 도입되면서 본격화됐다. 정부는 지난 2011년 첫 번째 주파수 경매에서 1조7,015억원을 확보한 데 이어 2013년 2차 경매에서 1조8,289억원을 받기로 했다. 지난해 3차 경매에선 예상보다 적기는 했지만 역대 최대인 2조1,106억원을 거두게 됐다. 이통사는 주파수 낙찰받은 해에 경매대금의 25%를 내고 나머지는 분납한다. 이에 따라 미래부는 2019년 주파수 할당 대가로 1조3,000억원을 받게 된다.
이통사가 정부에 내는 준조세는 이뿐만이 아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전파사용료 명목으로 가입자당 분기별 2,000원씩 연간 2,400억원 규모의 전파사용료를 이통 3사로부터 징수한다. SK텔레콤은 지난해 1,192억원을 전파사용료로 냈고 LG유플러스는 502억원, KT는 700억원가량을 부담했다. 물론 이 돈은 가입자들이 내는 통신요금에서 나온다.
이처럼 주파수 할당 대가와 전파사용료 등으로 정부가 매년 1조원이 넘는 수익을 올린다고 가정하면 이통 3사 가입자 5,000만명가량이 1인당 연평균 2만원 이상을 준조세로 정부에 내고 있는 셈이다.
특히 정부 살림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가 일반회계로 분류되는 전파사용료 인하에 강하게 반대한다. 방통위는 2012년 전파사용료를 25% 인하하는 전파법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지만 재정수지 악화를 우려한 기재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이통사들에 막대한 주파수 사용료를 요구하면서 통신요금이 비싸다고 지적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기본료 인하를 강제하기 전에 정부가 주파수 경매 비용을 낮추거나 전파사용료 인하 등의 당근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는 ‘주파수 경매 시 통신비 인하 성과와 계획 항목을 평가지표에 추가하겠다’며 통신비 인하를 요구했을 뿐 주파수 비용을 낮추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
다만 통신요금 원가가 공개될 경우 이통사들의 요금인하도 어느 정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전기통신사업법 28조는 ‘통신사는 가입비·기본료·사용료·부가 서비스료·실비 등 요금 산정 근거 자료를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현재 통신비에는 단말기 보조금 등으로 지급하는 마케팅 비용, 망 투자보수 비용, 법인세 및 준조세 비용 등이 포함돼 있어 원가가 공개될 경우 ‘비용을 줄이고 통신요금을 낮추라’는 압박이 한층 거세질 듯하다.
/양철민·권경원기자 chop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