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파격에 이어 문책성 인사를 단행했다. 사건을 부적절하게 처리하거나 이른바 ‘우병우 사단’으로 꼽히며 불명예 인사 명단에 오른 고위간부들을 수사지휘 라인에서 배제했다. 사실상 무보직 발령에 고검장과 검사장급 4명은 잇달아 사의를 표해 검찰 내 줄사표 사태마저 예견된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인사 태풍에 이은 인적 쇄신이 검찰 개혁을 한층 앞당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법무부는 8일 고검장·검사장급 등 수사지휘 보직자들을 12일자로 연구직이나 비(非)지휘 보직으로 전보하는 내용의 인사를 단행했다. 윤갑근(53·사법연수원 19기) 대구고검장과 정점식(52·20기) 대검찰청 공안부장, 김진모(51·20기) 서울남부지검장, 전현준(52·20기) 대구지검장 등이 법무연수원 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사의를 표하면서 인사가 인적 교체로 이어졌다.
이 밖에 유상범(51·21기) 창원지검장은 광주고검 차장검사로, 정수봉(51·25기)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은 서울고검 검사로 전보됐다. 검사장급인 노승권(52·21기) 서울중앙지검 1차장은 대구지검장으로 발령이 났다.
이날 인사에 대해 법무부는 과거 중요 사건에 대한 부적정 처리 등 문제가 제기됐던 검사들을 수사지휘 라인에서 배제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서울중앙지검장이 고등검사장에서 검사장급으로 하향 조정됨에 따라 검사장급 간부 2명이 동시에 근무하는 상황을 해소하려는 조치도 병행했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문책성 인사가 과거 사건 처리 문제는 물론 우병우 사단에 대한 정리작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고검장·검사장급 간부를 연구직으로 보내는 인사가 이례적인데다 이들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건을 담당하거나 개인적 인연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윤 고검장은 지난해 8월 우 전 수석의 비위 의혹을 파헤치는 특별수사팀장이었다. 유 지검장과 정 기획관은 2014년 우 전 수석 개입 의혹이 일었던 정윤회 문건 수사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과 형사 1부장으로 수사를 지휘했다. 게다가 정 기획관은 우 전 수석과 가까운 인맥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김 지검장은 우 전 수석과 대학·사법시험·사법연수원 동기로 사이가 각별했다고 알려졌다. 정 공안부장과 전 지검장도 우 전 수석과 대학 동기 사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문책성 인사의 핵심은 과거 부적절한 사건 처리와 우병우 라인으로 해당 간부들이 연이어 사의를 표하면서 자연스럽게 인적 쇄신까지 이뤄졌다”며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인사가 이르면 다음달 이뤄질 수 있어 검찰 개혁까지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인사를 통해 사실상 사퇴하라는 의사를 전달하면서 검찰 내 인적 변화를 꾀했다는 뜻이다.
한편 검찰 내부에서는 무리한 인사라며 반발하는 기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 과정에서 당사자에게 소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사유를 설명해주지도 않은 채 일방적으로 발표해 사실상 불명예 검사로 낙인찍었다는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