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10시. 집안일을 마친 주부 윤씨는 옆 동 24층으로 향한다. 최근 입주한 이 아파트 단지에서 가장 조망이 좋은 그곳에 마련된 ‘스카이 피트니스’에서 한 시간가량 운동할 생각이다. 운동을 마친 후에는 바로 옆 ‘스카이 라운지’에서 이웃들과 함께 차를 마시기로 했다. 하루 일과 중 윤씨에게 가장 여유로운 시간이다. 주말에는 아이들과 함께 텃밭 가꾸기를 해볼 참이다. 멀리 떨어진 주말농장을 찾을 일도 없다. 단지 안에 직접 채소를 재배할 수 있는 텃밭 ‘뷰팜 가든’이 조성돼 있기 때문이다. 야구광인 남편은 그 시간쯤 홀로 조용히 집을 빠져나가 스크린 야구장에 가 있을 게 틀림없다. 스크린 야구장 역시 단지 안에 마련돼 있어 입주민 누구나 즐길 수 있다.
최근 분양한 아파트에 들어설 커뮤니티 시설을 무대로 상상해본 주부의 일상이다. 아파트 단지 커뮤니티 시설의 진화 속도는 놀라울 정도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주민들의 공간이 만들어져 공동주택의 삶을 더욱 편리하고 재미있게 만들어주고 있다.
◇뻔한 헬스클럽은 가라, 암벽등반까지 등장=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스포츠 공간이 다채로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관리사무소 건물에 대충 만들어진 피트니스센터나 조금 발전한 실내 수영장 수준을 뛰어넘는다.
현대건설이 짓고 있는 개포주공3단지 디에치 아너힐즈에는 8m 높이의 실내 암벽등반 시설이 들어선다. 암벽 등반 인구가 늘고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이 단지에는 15m 길이의 골프연습장도 마련된다. 보통 단지 내 실내골프연습장의 비거리가 4m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디에이치 아너힐즈는 이보다 3배 이상 긴 셈이다. 규모도 단층이 아닌 1·2층의 복층 구조로 조성된다.
현대건설은 또 올 초 수주한 ‘부산사직 1-6 지구’ 재건축 아파트 단지에 ‘스크린 야구장’도 만들기로 했다. 부산에 유독 야구 열성팬이 많고 단지 인근에 사직야구장이 위치한다는 특성을 고려한 것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단지 내 스크린야구장 시설을 설치해 가족·지인들과 함께 즐길 수 있고 또 개인별 난이도 조절이 가능해 남녀노소 구분 없이 활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망대·스파 따로 갈 필요 없어요=얼마 전까지 커뮤니티 시설은 저층에 마련됐다. 수요가 높은 최상층을 굳이 공동 공간으로 돌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이런 관행도 깨지고 있다. 20층 이상의 높은 곳에 커뮤니티 센터를 배치해 모든 세대가 전망을 공유하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GS건설이 안산에서 분양하는 ‘그랑시티자이2차’가 대표적이다. 커뮤니티 시설 이름부터 높은 곳, 하늘을 뜻하는 ‘스카이 204’다. 단지 내에서 가장 조망이 좋은 24동 24층에 만들어진다. 스카이 204는 스카이 라운지, 스카이 피트니스, 루프 가든으로 구성돼 주변 경관을 즐기며 운동과 여가를 즐길 수 있다.
현대건설 개포주공3단지 ‘디에이치 아너힐즈’에도 대모산과 인접한 317동의 최상층인 30층에 스카이라운지가 설치된다. 코오롱글로벌이 하반기 부산 동래구 사직동에서 선보일 ‘아시아드 코오롱하늘채’도 아파트 최고층에 스카이라운지가 조성된다. 단지 인근에 위치한 사직구장 조망이 가능해 야구경기를 볼 수 있다. 서울 용산구 이촌동 래미안 첼리투스도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17층에 북카페와 피트니스·독서실·골프클럽 등을 운영하고 있다.
피트니스센터의 샤워시설에 딸린 소형 사우나와는 차원이 다른 대형 스파나 사우나를 갖춘 공간도 속속 들어서는 중이다. 소사지구 ‘평택 효성해링턴 플레이스’는 대형 스파와 습건식 사우나를 갖춘 최고 수준의 커뮤니티 시설을 제공할 방침이다.
◇자녀 안전, 여가 생활도 책임집니다=자녀들의 안전과 편안한 생활도 건설사들이 책임져야 할 몫이다. 롯데건설은 ‘고덕 롯데캐슬 베네루체’를 선보이면서 아이들을 위한 특화설계를 강조하고 있다. 어린이집에는 감성놀이터가 조성되고 통학버스 승하차가 이뤄지는 키즈스테이션도 들어선다. 쌍용건설이 경상남도 밀양시에서 분양한 ‘밀양 쌍용 예가 더 퍼스트’에도 자녀들이 안전하게 차량을 대기할 수 있는 맘스스테이션(새싹 정류장)이 설치된다. 스마트폰·PC 등을 통해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독서를 즐길 수 있는 전자책 도서관도 이 단지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SK건설은 대전에 짓는 ‘도룡 SK 뷰’에 주민들이 직접 채소를 재배할 수 있는 ‘뷰팜 가든’을 설치한다. 또 ‘송도 SK 뷰’에는 아이들의 기호에 맞춰 텐트 설치가 가능한 ‘캠핑존’도 조성하기로 했다. 대림산업이 지난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일대에 공급한 ‘e편한세상 용인 한숲시티’에는 축구장 15배 크기의 6개 테마파크가 조성된다. 이 중 포레스트파크(Forest Park)는 다양한 수종이 어우러진 산책로가 조성돼 굳이 야외로 나가지 않더라도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반려견을 키우는 입주민을 위한 시설도 등장했다. 흥한건설이 경남 사천시 유천리에 짓는 ‘사천 그랜드 에르가 1930’에는 ‘펫족’들을 위한 애견 놀이터가 마련된다.
손님이나 친지가 방문했을 때 방 하나를 내줘야 하는 불편함도 사라졌다. 방문객들이 이용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갖춘 단지들이 등장했기 때문. 경기도 의정부시에 최근 분양한 ‘e편한세상 추동공원2차’나 ‘힐스테이트 당진’ 등이 대표적이다. 대우건설의 평택 비전 레이크 푸르지오 역시 손님맞이·이벤트 등 여러 용도로 활용 가능한 게스트하우스를 제공한다.
단지 내 커뮤니티 시설은 입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이웃과 소통하는 공간이라는 장점도 있지만 분양가 및 관리비가 높아진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특히 500세대 미만의 소규모 단지에서는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애물단지가 되는 경우도 있다. 불필요하게 자리만 차지하는 시설이 많지는 않은지, 추가 이용요금이나 조건 등은 어떤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노희영기자 nevermind@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