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관리하는 을지로·명동·강남·영등포 등 25개 구역 지하상가 상점 2,700여곳의 임차권 양수·양도를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이 곳에서 장사하던 상인들이 권리금을 받고 다른 상인에게 가게를 넘기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12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지난 8일 임차권 양도 허용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의 ‘지하도상가 관리 조례 일부개정 조례안’을 입법예고했다. 조례 개정 이유로는 “임차권 양수·양도 허용 조항이 불법권리금을 발생시키고 사회적 형평성에 배치된다는 시의회 지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례로 임차권리 양도를 허용하는 것은 법령 위반이라는 행정자치부의 유권해석이 있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이달 말까지 조례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 뒤 시의회 의결을 거쳐 지하상가 임차권 양도를 금지할 계획이다. 이번 조치의 영향권에 놓이는 서울의 지하상가는 총 25곳. 점포 수만 2,788개에 이른다.
임대차 양도가 금지되고 점포가 비게 되면 서울시는 이들 점포를 회수해 경쟁입찰을 통해 새 주인을 찾게 된다. 이미 서울시는 지난 2011년부터 최고가를 적어내는 곳에 지하상가 점포를 임대하는 경쟁입찰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서울시 지하상가 대부분은 민간이 도로 하부를 개발해 조성한 상가를 장기간 운영한 뒤 되돌려주는 기부채납 형태로 생겼다. 서울시는 1996년 지하상가가 반환되자 1998년 임차권 양도 허용 조항이 포함된 지하상가 관리 조례를 제정했다.
이후 임차권 양도·양수가 지난 20년간 이뤄져 왔기에 지하상가 상인들은 서울시 조치가 갑작스럽다는 반응이다. 종로2가 지하상가에서 가방·악세사리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60) 사장은 “이 곳에 가게를 낸 지 5년쯤 됐는데 나도 권리금 주고 들어왔다”며 “이제 와서 갑자기 권리금을 못 받게 한다면 어쩌란 말이냐”고 토로했다.
지금까지 지하상가 점포의 손바뀜은 대부분 기존 상인의 임대차 계약 양도를 통해 일어났다. 장사가 잘 되는 가게는 이 과정에서 권리금이 오갔다. 문제는 권리금 규모가 커지면서 시장이 혼탁해진 것이다. 강남 지하상가의 경우 A급 입지 점포 권리금은 2억∼3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인들은 불법 권리금 문제가 일부 강남권 상가에 국한돼 있다고 주장한다. 을지로 지하상가의 한 상인은 “경쟁입찰에서 유통 대기업들이 최고가를 적어 점포를 싹쓸이하면 소상공인만 밀려난다”고 우려했다.
권리금 이슈는 오랫동안 논란이 돼 왔다. 지난 2015년 개정된 상가임대차보호법에서는 처음으로 권리금을 합법적으로 인정했다. 다만 지방자치단체 등이 보유한 공유재산에도 권리금을 인정할 수 있느냐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임차권 양도 허용은 상위 법령 위반이라는 행자부의 유권해석이 있었고 감사원도 법령을 준수해야 한다는 지적을 했기에 조례 개정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수문·김정욱기자 chs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