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세계 자동차 판매 1위 자리를 4년 만에 독일 폭스바겐에 내준 일본 도요타는 올해 3월 노사 임금협상에서 기본급을 월 1,300엔(1만3,000원)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인상 폭은 지난해보다 오히려 13% 줄었다. 여름 휴가비도 18.2% 삭감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권이 출범한 뒤 엔화 가치가 하락하고 판매 실적이 예상보다 부진한 것이 이유다. 또 다른 일본차 닛산 역시 지난 3월 춘계 임금협상에서 기본급을 인상액을 지난해의 절반인 1,500엔으로 낮췄다.
# 현대자동차는 올해 5월까지 판매량이 182만여대로 지난해보다 6.5% 감소했다. 특히 중국과 미국에서 죽 쑤면서 5월 실적이 14.2% 급감했다. 지난해 18년 만의 마이너스 성장에 이어 올해 역시 판매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올해 현대차 노조는 임금 및 단체협상에서 월급 15만4,000원(기본급 7.18%) 인상, 전년 수익의 30% 수준 성과급을 요구하고 있다. 또 만 60세인 정년을 최장 64세까지 늘리고 근속 20년 포상 해외여행에 더해 근속 30년 포상 여행도 요구했다. 박유기 현대차 노조위원장은 13일 임단협 출정식에서 “지금까지 투쟁해서 얻은 우리의 기득권을 후퇴시키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당당하게 선포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글로벌 메이커와는 판이하게 다른 행보를 보이며 경쟁력 저하에 내몰리고 있다. 독일·미국·일본 차들은 미래차 개발과 위기 타개를 위해 노사가 합심해 전력을 다하고 있지만 국내 자동차업계는 판매 부진에도 끝이 안 보이는 노조와의 싸움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올해 현대·기아차는 역대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현대뿐 아니라 기아의 1~5월 글로벌 판매량은 8.5% 급감했다. 양사 모두 중국 판매가 3분의1 토막 났고 미국에서는 5월 주요 15개 브랜드 중 감소 폭이 가장 컸다. 박한우 기아차 사장은 노조와 만나 “미국발 통상압력과 중국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로 절체절명의 상황”이라며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노조는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현대차는 올해 14차, 기아차는 7차 교섭까지 진행했다. 하지만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 노무 총괄인 윤여철 부회장은 “노조가 해마다 요구하는 것이지만 올해는 (강도가) 세다”고 토로한다.
올해는 현대·기아차 뿐 아니라 한국GM은 물론 노사 관계가 원만했던 쌍용차와 르노삼성까지 전운이 감돌고 있다. 한국GM은 지난해 ‘말리부’ 인기에 역대 최대 내수 판매를 달성했다. 하지만 GM의 유럽 시장 철수 여파로 수출 물량이 급감해 5,300억원의 적자를 냈다. 하지만 노조는 15만4,883원의 기본급 인상과 500%의 성과급 지급, 명확한 미래 성장 방안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해 9년 만에 흑자 전환한 쌍용차 노조는 올해 기본급 11만8,000원 인상을 외쳤다. 지난해(기본급 5만원)에 비해 2.4배 많다. 쌍용차는 2009년 대규모 구조조정 이후 회사 정상화를 위해 7년 연속 무분규를 기록했다. 하지만 올해 쌍용차 사정은 녹록지 않다. 수출 감소와 원화 강세로 올 1·4분기 155억원 영업적자였고 ‘티볼리’의 경쟁모델인 현대차 ‘코나’, 기아차 ‘스토닉’이 등장해 어려움이 예상된다. 르노삼성 노조 역시 올해 강경한 기조다. 르노삼성 노조는 기본급 15만원 인상 등을 제시했다. 지난해 ‘SM6’ 돌풍과 수출 물량 확대로 매출 6조원, 영업이익 4,000억원 등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것이 이유다. 노조 관계자는 “2012년 후 회사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사실상 매년 임금을 동결해왔다”며 “올해는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매년 반복되는 노조와의 갈등으로 한국 자동차 산업은 후진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은 인도에 자동차 생산량 5위 자리를 내줬다. 높은 인건비와 반복되는 파업 등으로 해외공장 생산 비중이 커진 탓이다. 실제로 1~5월 자동차 수출은 3년 연속 감소세다.
국내 업체와 달리 해외 업체들은 미래차 연구에 올인하고 있다. 도요타는 최근 스마트 모빌리티 연구를 위해 미국 미시간에 위치한 안전연구센터에 5년간 3,500만달러를 투자한다. 벤츠나 BMW 등 주요 브랜드 역시 미래차 연구에 한창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과거 박근혜 정부와 달리 비교적 노조 활동에 호의적이어서 노조의 목소리가 더 커지는 모습”이라며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노사 관계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