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성인남녀 미혼자들의 싱글 라이프를 비롯해 40~50대 싱글 남성의 일상을 보여주는 관찰 예능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실제로 미혼, 비혼, 이혼 등의 이유로 혼자 사는 40·50대 남성이 증가하면서 트렌드에 민감한 유통업계에서는 자신의 삶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고 가꾸는 이들에게 주목하고 있다. 유통계의 큰 손으로 떠오른 ‘4050 아재들의 일코노미(1인과 경제를 뜻하는 이코노미의 합성어)’에 대해 이들 세대만의 특성, 소비 행태, 유통업체 동향 등을 총 3편에 걸쳐 조명한다.
#. 모 기업의 팀장인 김은협(가명·48)씨는 매주 주말 오전 11시면 자신의 차를 몰고 교외에 위치한 대형 쇼핑몰을 방문한다. 반바지에 선글라스 등을 걸친 편한 차림으로 김씨가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캠핑용품’ 코너다. 그가 매주 이곳까지 먼 걸음을 하는 이유는 일반 백화점에서 볼 수 없는 명품 캠핑용품 브랜드가 입점해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부터 여름용 취미 생활을 위해 캠핑 동호회에 가입한 김씨는 1인용 스마트 텐트부터 자동 의자 등 크고 작은 캠핑 용품을 사는 재미에 푹 빠졌다. 김씨는 “쉬는 날이면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휴식을 포기해야 하는 주변의 기혼 친구들과는 달리 여유로운 주말을 보낸다”며 “자녀들이 있으면 교육비, 생활비 드느라 등골이 휘었을텐데 지금은 수입 전체를 나만을 위해 쓸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썰렁 개그’, 배바지‘, ’등산복’ 등의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40·50대 아재들. 아저씨의 낮춤말인 아재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과거 중·장년층을 비하하는 ‘꼰대’와 동급으로 불리던 용어였다.
그러나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서 개그 소재로 사용되는 등 대중매체를 통해 급격하게 확산되면서 아재들이 친근한 이미지로 탈바꿈했다. 실제로도 요즘 40·50대 아재들은 시덥지않은 썰렁 개그를 날리는 아저씨보단 젊고 멋있게 사는 꽃중년의 이미지가 강하다. 트렌디한 패션 감각, 철저한 자기관리, 열려있는 생각에 20·30대가 따라올 수 없는 중년미까지 더해져 일명 아재파탈(아저씨를 의미하는 ‘아재’와 치명적인 여성을 뜻하는 프랑스어 ‘팜므파탈’의 합성 신조어)의 매력을 자랑한다. 이러한 추세에 힘입어 트렌드에 민감한 국내 유통업계에선 4050 아재, 그 중에서도 혼자 사는 중년이 ‘보이지 않는 큰 손’으로 급부상했다.
소비 시장의 떠오르는 샛별, ‘아재슈머’ 들은 어떻게 꼰대 이미지를 벗고 꽃중년으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먼저, 이 세대들만이 가진 특징에 대해 낱낱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요즘 40·50대는 1965년~1979년 사이에 출생한 집단들로 1990년대 대중문화를 이끌던 ‘X세대’ 혹은 ‘오렌지족’ 세대다. 이들은 당시 사회 분위기와 달리 파격적이고 과감하게 자신을 드러낼 줄 아는 강한 개성을 가져 기존의 가치관과 문화를 거부하는 일탈 집단으로 여겨졌다.
특히 과거 중년 세대와 달리 가정보다는 개인의 인생을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는 점에서 ‘뉴노멀 중년(New Normal Middle Age)’ 혹은 ‘영포티(Young Forty)라고도 불린다. 신광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의 40·50세대는 그들의 부모세대가 한국 사회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부흥했을 때 태어나 비교적 풍요로운 청년기를 보냈다”고 분석했다. 이어 “1990년대 후반 해외 여행이 자유로워지면서 당시 20대였던 X세대들이 서구 대중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돼 과거 세대와는 다른 특성을 갖게 됐다”고 덧붙였다.
트렌드에 민감한 유통업계에서는 40·50대 남성, 그것도 혼자 사는 중년이 급증하면서 소비 시장에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최근 40·50세대가 전 세대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다, 삶에 대한 가치관과 소비에 대한 태도와 행동, 전통적인 가족 구성원에서 일탈 등 기존의 중년세대와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5년 통계청이 실시한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전체 세대 총 인구 중에서 40·50대의 비율이 약 34%를 차지했으며 어느 세대보다 인구수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목할 점은 가구 구성에서도 40~ 50대의 1인 가구 남성 비중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연령별 남성의 1인 가구 비율을 보면 지난 5년새 20대, 30대는 줄어든 반면 40·50대 남성들은 증가세를 보였다. 중년 남성층이 1인 가구화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미혼, 비혼, 이혼에 따른 ‘돌싱족’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신교수는 “경제불황이 계속 지속되다 보니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으로써 부담감이 커져 이혼율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미혼, 비혼을 생각하는 중년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수년간 굳건하게 안정적인 소비주체로 꼽혔던 40·50대와 최근 유통업계의 흐름을 바꾸고 있는 ‘1인 가구’가 결합돼 유통업계에선 블루오션이 된 셈이다. 따라서 트렌드에 민감한 유통업계에서는 안정적인 소비 고객층이면서 구매력을 가진 40·50대 독신 아재들에게 집중하는 추세다. 모 백화점의 성별·연령별 구매 비중을 비교해보면 40·50대 남성 고객이 약 20%에 달하며 이들의 구매 금액은 전 연령층의 21%를 차지한다.
신세계 백화점 관계자는 “실제로 최근 40·50 남성 고객들이 다른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소비 여력을 기반으로 럭셔리 제품군인 시계 등 구매가 증가하고 있으며 매출 역시 연 20% 씩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씀씀이가 큰 만큼 브랜드상품을 선호하는 독거 아재들은 백화점몰, 홈쇼핑계열 쇼핑몰을 통해 의류, 악세서리 등 구매를 선호하며 G마켓, 옥션 등을 통해 가전·IT기기, 여행 상품들을 구매한다.
G마켓 관계자는 “40·50 세대는 다른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소비 여력을 기반으로 온·오프라인에서 활발한 소비 활동을 하고 있다”며 “여름철이 다가오면서 40·50대 남성 고객들이 여유로운 삶을 위한 여행·항공권 카테고리의 소비가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