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인 노후생활 보장 장치로서 퇴직연금의 역할이 중요해지면서 연금자산 규모가 150조원까지 성장했다. 퇴직연금 운용 현황은 ‘70%의 높은 확정급여형(DB) 제도 선택, 89%의 원리금보장형 상품 선호, 77%의 1년 미만 투자기간 비중’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와 같은 ‘DB 선호, 위험회피 투자성향, 1년 미만 단기투자’의 특징은 ‘근시안적 위험회피 성향’으로 설명될 수 있다.
퇴직연금에서 이러한 현상이 작동되는 이유는 먼저 안정적인 연금수급권 보장을 이유로 한 과도한 자산운용규제를 들 수 있다. 규제에 의한 운용방법을 보면 원리금보장형 상품으로 유도하는 내용이 상당수 있다. ‘원리금보장’과 ‘위험자산’이라는 표현에서 보듯 선택자로 하여금 원리금보장형 상품이 아니면 나쁜 투자라는 인지적 편향을 가지게 한다. 근로자가 자신의 투자성향과 투자목표를 고려해 다양한 투자자산에 포트폴리오 투자를 할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한다.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는 우리나라처럼 퇴직연금 운용에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대리인 문제도 있다. 기업의 퇴직연금 DB업무 담당자 대부분은 금융전문가가 아닌 경우가 많으며 사내에 퇴직연금 투자운용준칙(IPS)도 마련돼 있지 않다. 또한 운용성과 평가는 연간 단위로 이뤄지고 이에 따른 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퇴직연금은 장기투자자산임에도 불구하고 1년 이하의 원리금확정형 상품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실정인 것이다. 금융전문가로 구성된 기금운용위원회와 IPS 도입 등 기금운용제도를 개선해야 대리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근로자의 금융지식과 거래 편의성 부족,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제도적 미비이다. 확정기여형(DC) 가입자는 충분한 금융지식을 가지고 합리적 투자 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언제든지 투자를 실행할 수 있는 편의성이 제공돼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위험부담이 적은 원리금확정형을 선택하고 실적배당형에 투자하더라도 금융환경 변화에 따른 적절한 리밸런싱을 하지 못해 낮은 성과에 직면하게 된다. 근무시간 중 금융기관을 방문하지 않아도 투자를 실행할 수 있는 제도 보완과 거래 수단이 필요하다. 여전히 대리인 문제가 발생하겠지만 운용전문기관이 근로자를 대신해 일임운용을 하는 것도 개선 방안이 될 수 있다.
근시안적 위험회피 관행을 극복해야 라이프사이클을 고려한 장기투자 관점의 균형적인 포트폴리오 투자가 가능하다. 이를 통해 퇴직연금이 근로자의 안정적인 노후 보장을 위한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