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월드컵 본선에서 1무2패의 수모를 당한 게 벌써 3년 전이다. 한국 축구의 대표팀 운영은 3년간 오히려 퇴보했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15일 파주 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 회의를 열어 울리 슈틸리케(63·독일) 감독을 경질했다.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탈락 뒤 홍명보 감독의 유임을 발표했다가 여론이 악화하자 1주일 만에 자진사퇴 형식으로 부랴부랴 마무리했던 2014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슈틸리케호는 지난 3월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중국에 0대1로 지고 약체 시리아를 1대0으로 겨우 이겼다. 협회는 그러나 조 2위임을 강조하며 본선 직행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앞서 지난해 10월 슈틸리케 감독은 취재진 앞에서 공개적으로 패배의 책임을 선수 탓으로 돌렸다. 팀 내 분위기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지만 이때도 협회는 사태의 심각성을 애써 외면했다. 두세 번의 경고등에도 꿈쩍 않다가 본선 직행 좌절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눈앞에 닥쳐서야 뒤늦게 수습에 나선 것이다.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슈틸리케 감독과 상호합의에 따라 계약을 종료하기로 했다”며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며 저 역시 기술위원장을 그만두기로 했다”고 밝혔다. 2014년 9월 부임한 슈틸리케는 2년9개월간 사령탑에 머물며 한국 대표팀 역대 최장수 감독 타이틀을 얻었지만 끝내 월드컵 무대를 밟지 못하고 옷을 벗었다. 계약기간이 월드컵 본선까지였던 터라 협회는 슈틸리케의 1년 연봉(최소 15억원 추정)을 보전해줄 것으로 보인다.
슈틸리케는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에서 선수로 뛰기도 했지만 감독으로는 크게 내세울 게 없었다. 협회는 그러나 독일 청소년 대표팀을 오랜 기간 지도했던 경험에 주목하며 한국 축구의 체질을 변화시킬 인물로 기대했다. 2015년 1월 아시안컵 준우승, 그해 8월 동아시안컵 우승 때만 해도 이른바 실리 축구로 팬들 사이에 ‘갓(god)틸리케’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스페인과 유럽 평가전에서 1대6으로 대패한 뒤로 여론은 싸늘하게 식어갔다. 그해 9월 월드컵 최종예선 1차전 홈경기에서 중국에 3대2로 진땀승을 거두고 2차전 시리아와 득점 없이 비길 때 팬들은 이미 등을 돌렸다. 전술변화에 둔감하다는 평을 들은 슈틸리케는 “소속팀에서 출전기회가 적은 선수는 뽑지 않는다”는 원칙을 스스로 깨면서 대표팀 명단을 발표할 때마다 질타를 받았다. 재임 기간 27승5무7패의 기록을 남겼지만 승수의 상당수가 약팀을 상대로 한 것이었다. 팬들의 뇌리에는 3월 중국 원정 0대1 패배의 ‘창사 참사’와 지난 14일 카타르 원정 2대3의 ‘도하 쇼크’가 깊이 박혀 있다.
최종예선 4승1무3패(승점 13)로 A조 2위인 대표팀은 오는 8월31일 ‘최강’ 이란과의 홈경기, 9월5일 우즈베키스탄 원정만을 남기고 있다. 3위 우즈베키스탄에 1점 차로 쫓기고 있어 플레이오프로 밀릴 위험이 크다. 이 위원장은 차기 사령탑 선임과 관련, “외국인 감독이 선수 파악부터 다시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선수들이 심적으로 가라앉아 있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를 끌어올려야 한다”며 월드컵 최종예선을 경험했던 국내 지도자를 추천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국내 지도자를 선임할 경우 남은 예선 2경기를 포함, 월드컵 본선까지 준비하도록 계약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차기 감독은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임명할 신임 기술위원장이 새 기술위와 함께 결정한다. 축구협회는 “늦어도 7월 중으로 새 감독을 선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을 이끌었던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가 1순위로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