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영구정지를 사흘 앞둔 부산 기장군 고리1호기 원자력발전소 내부로 들어서자 터빈발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주변의 모든 소리를 집어삼켰다.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의 전력을 뿜어냈던 터빈발전기는 지나온 40년처럼 늘 그랬듯 무심히 가동되고 있었다. 고리1호기의 전력계통을 통제하는 주제어실 직원들은 영구정지 전까지 최종 점검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주제어실에서 만난 박지태 한국수력원자력 발전1소장은 “정성스러운 점검으로 영구정지까지 안전운전을 이어갈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38년 동안 근무하면서 고리1호기와 역사를 같이 했는데 막상 영구정지된다니 아쉬운 마음이 크다”면서도 “원전 해체 과정 역시 중요하기 때문에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원전을 영구정지하는 과정은 고속으로 달리는 자동차가 서서히 멈추는 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자동차가 브레이크를 서서히 밟아 속도를 줄인 뒤 정지하는 것처럼 발전기의 출력을 서서히 낮춰 최종적으로 정지하는 수순을 거친다. 16일 방문 당시 주제어실 가운데 위치한 고리1호기의 발전량을 가리키는 전광판은 ‘602메가와트(MW)’를 가리키고 있었다. 방문 다음 날인 17일부터 한수원은 영구 정지를 위해 우선 이 출력을 60MW 이하로 떨어뜨렸고 발전기 ‘계통 분리’를 시작했다. 계통 분리는 고리1호기에서 만들어진 전기를 외부로 흘러 나가는 것을 차단하는 작업을 말한다. 같은 날 오후 6시 주제어실 계기판에 ‘빨간버튼’을 눌러 계통 분리를 끝내고 발전기 가동을 멈췄다. 이어 오후6시38분에는 원자로에 제어봉을 삽입하면서 발전소의 핵심인 원자로까지 정지했다. 앞으로 원자로 냉각수 온도를 낮춰 19일 0시를 기해 공식적으로 고리1호기는 영구정지에 들어가게 된다.
고리1호기에서 사용된 핵연료는 물로 가득 차 있는 사용후 연료 저장소(습식저장시설)로 옮겨 6~7년간 충분히 냉각하는 과정을 거친다. 최종적인 원전 해체는 계획을 세우는 데부터 실제 해체하는 작업, 환경 복원 등에 약 20년이 소요된다.
고리 1호기는 1971년 미국 정부의 차관과 원전 회사 웨스팅하우스의 기술 지원을 받아 착공했다. 1978년4월29일부터 첫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 1호기가 지난 40년 동안 생산한 전력은 15만5,260기가와트시(GWh)에 달한다. 지난 40년간 전력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공급하면서 우리 경제가 고속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됐고 우리나라가 에너지 자립국, 원전 수출국이 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했다. 노기경 한수원 고리원자력본부장은 “고리1호기는 지난 40년간 부산시 전체가 8년 동안 쓸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하며 맡은 소임을 다했다”면서 “한수원 직원들은 역시 중간저장 시설 설치와 시설물 해체 등 남은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리 1호기의 영구정지는 우리나라 원전 정책에도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고리 1호기 퇴역을 계기로 문 대통령이 탈(脫)핵에너지 로드맵을 발표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기간 중 탈핵 에너지 전환 로드맵 수립을 공약한 만큼 2030년까지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원전 12기 역시 계속 운전 가능성이 줄어든데다 현재 건설 중인 원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값싼 에너지원을 포기하게 되면서 일반 국민들에게는 전기요금 인상과 전력 공급 차질 문제 등에 직면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부산=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