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민(45·사진) 하이보이스 대표는 영화판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대학에서 영화 편집을 전공했고 2002년 영화 편집 전문업체인 ‘필름닷’을 설립해 주요 독립 영화의 편집을 담당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한국영화계가 상업영화 중심의 시장으로 재편되면서 고객이 감소해 2011년 사업을 접어야 했다.
마음을 다잡고 2015년 영상제작 교육업체를 차렸지만 이마저도 신통치 않았다. 비슷한 업체들이 많아 고객들이 찾지 않았다. 한동안 고전하다가 이 대표는 해외로 제품을 판매하길 원하는 중소업체를 중심으로 외국인 성우 더빙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높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시장 조사를 해보니 아직 규모는 작지만 성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대표는 창업 4개월 만에 외국인 성우 서비스로 과감히 사업 분야를 바꿨고 그 결과 하이보이스는 지난해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꾸준히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이 대표는 18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보통 예술인들은 사업을 해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는데 시장과 고객을 모르면 성공하기 어렵다”며 “고객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만들고 고객과 최대한 가까이 있도록 노력하다 보니 재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이보이스는 고객이 자체 제작한 영상을 가져와 더빙을 의뢰하면 내용과 목적에 맞는 적절한 외국인 성우를 추천한다. 하이보이스가 확보한 성우진은 현재 220여명으로 영어권 성우가 60%로 가장 많다. 중국어·일본어·스페인어·아랍어 등 30여개 언어 더빙이 가능하다. 외국인 성우진의 목소리를 들려주면 고객이 원하는 목소리를 직접 고를 수 있다.
성우가 확정되면 영상에 더빙을 입히는 작업을 실시한다. 성우 녹음 과정에서 발견되는 어색한 번역투의 자막도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수정해 준다. 이 대표는 “성우 풀(pool)이 크다 보니 해외시장에 제품·서비스를 소개하려는 업체, 외국인 대상 안내 방송이 필요한 국내 기관 등 다양한 고객들이 하이보이스를 찾고 있다”며 “가격도 100단어당 3만5,000원으로 기존 더빙 업체보다 저렴한 편이어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이보이스가 시장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데에는 중소기업청과 창업진흥원의 ‘재도전 성공 패키지’지원 사업 역할이 컸다. 하이보이스는 지난해 재도전 성공 패키지 사업을 통해 서울 역삼동 팁스(TIPS·민간투자주도형 기술창업지원 )타운에 약 10개월 정도 입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5,000만원 규모의 사업비 지원도 받았다. 이 대표는 “팁스 타운에 입주할 당시 비슷한 처지의 재도전 기업 대표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며 “그때 실패 경험에서 터득한 재기 노하우를 서로 많이 공유한 게 사업 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하이보이스의 목표는 해외 진출 국가를 늘리는 것. 올해는 일본, 내년에는 대만과 독일에 진출할 예정이다. 일본이나 대만, 독일도 수출 국가이다 보니 영어 동영상으로 제품을 알리길 원하는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 독일 현지 등에 상담소를 두고 최대한 많은 고객을 유치할 예정”이라며 “해외 국가에도 좋은 품질의 더빙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내 유망 중소업체들이 글로벌 판로를 더 많이 확대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