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는 신호탄이에요. 앞으로 줄줄이 사퇴할 겁니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지난 16일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회장이 임기를 3개월여 남기고 전격 사퇴하자 이같이 말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낙하산으로 내려온 인사들의 줄사퇴가 임박했다는 얘기다. 김 전 회장은 박 전 대통령이 당선된 18대 대선 당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공동위원장을 지낸 대표적인 친박 인사다.
공교롭게도 정부는 이날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어 119개 공공기관(공기업·준정부기관)에 대한 경영평가 결과를 내놓았다. 대한적십자사는 기타 공공기관이라 경영평가 대상에서는 빠졌지만 이날 평가 결과가 공공기관장들의 거취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전임 정부 인사로 분류되는 기관장들의 상당수가 교체 대상에 오를 것으로 보여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가 예고되고 있다.
18일 공공기관 경영정보시스템인 알리오에 따르면 332개 공공기관에서 올해 연말 이전 기관장의 임기가 끝나는 곳은 69곳이다. 임기가 만료됐지만 후임 인사가 나지 않아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기관이 21곳, 기관장이 물러난 뒤 공석인 곳이 8곳이다. 기본적으로 올해 98개 공공기관의 기관장이 바뀌는 셈이다. 이는 전체 공공기관의 3분의1에 달하는 수치다.
임기가 내년 이후지만 박근혜 정부 당시 친박 낙하산으로 채워졌던 공공기관장들이 자천타천으로 일부 옷을 벗을 경우 그 수치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공공기관 안팎에서는 전임 정부에서 요직을 맡았거나 집권 여당이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출신이 주로 거론된다. 주철기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전 외교안보수석), 최성재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원장(고용복지수석)과 정치인인 박보환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장정은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원장, 이상권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 등이다. 금융공기업 중에서는 전임 정부 인사로 분류되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정찬우 한국거래소 이사장 등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공공기관장의 임기는 기관에 따라 2년 이후 연임하거나 2년 이후 1년 추가, 또는 3년 단임 등이 보통이다. 하지만 임기가 보장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정권 창출에 공헌한 인사들에 대한 보은인사로 낙하산이 대거 내려오기 때문이다. 이에 정권 초기에는 코드에 맞지 않는 인사가 스스로 용퇴하거나 교체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정권 말기에도 마지막 낙하산들이 대거 내려온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12월9일 탄핵소추안 가결로 대통령이 공석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황교안 권한대행이 새 정부 출범 전인 5월 초까지 48명의 공공기관장을 새로 임명해 논란을 빚었다.
아직 새 정부 내각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진행 중이지만 주요 인사에 대한 인선이 대부분 마무리된 만큼 공공기관장 인사 태풍도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공기관의 한 관계자는 “경영 효율성을 앞세웠던 성과연봉제가 사실상 폐지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화두가 되는 등 공공기관을 바라보는 시각이 180도 바뀌었다”며 “공공기관장 후속 인사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라고 관측했다.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정권 코드에 맞춘 공공기관장 교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할 때라는 것이다. 공공기관의 한 최고경영자(CEO)는 “역대 정부에서 공공기관이 보은인사의 서식처로 전락한 것은 맞다”며 “다만 기관장들의 임기가 짧아 중장기 경영목표 수립은 물론 제대로 경영을 하고 싶어도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김정곤기자 mckid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