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일반적으로 타던 차를 ‘바꿀까’ 하는 생각이 들 때쯤 계기판에 찍히는 주행 거리다. 출퇴근 위주의 운전자라면 7~8년 걸린다. 지난달 23일 기아자동차가 출시한 프리미엄 스포츠 세단 스팅어는 출시 전 1년 새 10만㎞를 달렸다. 그것도 일반 도로가 아니다. 지리산과 한계령, 양평 증미산, 가평 로코갤러리, 춘천 느락재, 화천 광덕계곡 등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산악 코스다.
지난 9일 경기도 화성시 현대·기아차(000270) 남양연구소에서 만난 김윤주(사진) 총합성능개발실 이사는 “기획 단계부터 드라이빙 밸런스에 초점을 맞춘 만큼 언제, 어디서든 안정적인 주행 성능을 구현하는 게 관건이었다”며 “1년 전 프로토 타입의 차량이 나오면서부터 스팅어 개발팀 3명은 거의 매주 전국의 와인딩 코스를 달렸고 특히 미끄러운 노면에서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눈만 오면 몰고 나갔다”고 설명했다.
총합성능실은 오케스트라로 비유하면 지휘자 격이다. 엔진과 변속기·서스펜션·브레이크 등 차량에 탑재되는 각 부품의 성능이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어루만지는 역할을 한다. 스팅어 개발명을 딴 ‘CK’ 팀 소속 이재욱 파트장과 권수현 책임연구원, 오승태 연구원이 김 이사와 함께 스팅어의 조율을 책임졌다. 김 이사는 “마지막 2% 과정의 튜닝 작업이 고객이 느끼는 차량의 성능을 좌우한다”며 “스팅어는 지금까지 기아차가 개발한 모델 중 이 2%의 맛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가장 많이 쏟아부은 차”라고 설명했다. 출시 전 공용도로 주행을 위해 위장막을 벗기고 입힌 횟수만 300회가 넘는다. 그 횟수만큼 미세 튜닝 작업이 이뤄졌다는 얘기다.
스팅어 튜닝 실무 책임자인 이재욱 파트장이 운전대를 잡은 스팅어를 타고 남양 연구소의 주행 시험로에서 성능을 체험해봤다. 시속에 따라 동심원으로 그려놓은 회항 시험장에서 시속 50~60㎞의 속도로 급회전해도 차체의 쏠림 현상은 적었다. 기아차가 독자 개발한 저중심 후륜 플랫폼의 강성이 제대로 느껴졌다. 이 파트장은 “일반 도로에서의 안전성을 보장하기 위해 연구소 내에서도 수백차례 테스트를 진행한 후 밸런스를 잡아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진입한 고속 주행 구간에서 스팅어는 시속 200㎞를 훌쩍 넘는 속도로 최고각도 43도의 곡선 구간 상단까지 올라가며 노면에 착 달라붙은 채 돌아나갔다.
스팅어의 주 고객층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30~40대 남성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고객 분포도를 보면 50대 이상이 20%를 웃돌 만큼 적지 않다. 그리고 이 중 상당수는 여성 운전자다. 이를 예상했을까. 김 이사는 “스팅어의 다이내믹한 주행성능을 튜닝하면서 도심에서의 초반 가속 성능과 안정적인 제동력 등 여성 운전자를 위한 배려도 충분히 넣었다”며 “이는 총합성능개발실의 모든 여직원이 직접 도심 주행을 한 후 내놓은 의견을 토대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화성=조민규기자 cmk25@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