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연금을 받는 노인에게 대선은 ‘용돈’을 불릴 수 있는 호기다. 박근혜 정부가 월 10만원가량이던 기초연금액을 20만원으로 올리더니 문재인 정부는 내년 25만원, 오는 2021년 30만원으로 올릴 계획이다. 10~19년간 보험료를 내고 국민연금을 타는 노인들이 받는 평균 연금이 월 40만원가량인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돈이다.
기초연금액을 올리지 않더라도 수급자가 올해 500만명에서 내년 520만명 규모로 늘어나기 때문에 내년에 연금 지급에 드는 혈세(지방정부 예산 포함)는 11조원을 넘는다. 여기에 내년 4~12월 연금액을 월 5만원가량 더 지급하려면 2조4,000억원이 추가로 든다. 문재인 정부가 연금액 인상에 쓰는 돈은 연평균 4조4,000억원에 이른다.
혜택이 늘어나는 것은 기초연금만이 아니다. 국민연금에서도 출산장려 효과가 없거나 아동수당 도입, 사병 월급 대폭 인상과 중복되는 혜택을 주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된다. 아이를 하나만 낳아도 부모 중 한 명에게 12개월의 국민연금 가입기간 보너스(출산 크레디트)를 몰아주거나 나눠주고 병역의무 이행자에게 주는 ‘군 복무 크레디트’를 6개월에서 의무 이행기간 전체(육군 현역 21개월)로 확대하겠다는 게 그 예다. 첫 자녀 출산 크레디트 도입과 군 복무 크레디트 15개월 확대는 각각 월 2만원, 1만2,500원가량의 연금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정부가 미리 보험료를 내지 않을 가능성이 커 미래세대의 부담만 키울 수 있다. 출산 크레디트는 재원의 70%를 가입자·수급자들의 공동자산인 국민연금기금에서 부담한다. 두 크레디트 지급에 드는 돈은 2083년까지 340조원(현재가치 기준)에 이른다. 출산과 병역의무 이행을 유도하는 효과도 없는데 정부가 선심을 쓸 문제가 아니다.
더 뜨거운 감자는 박근혜 정부가 숱한 비난을 감수하며 기초연금에 도입한 ‘국민연금 가입기간 연계제도’다. 국민연금은 낸 보험료보다 평균 1.8배가량을 더 받는다. 따라서 가입기간이 길수록 기금에서 챙기는 ‘플러스알파’도 커진다.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길면 기초연금액을 깎는 제도에는 혈세를 절약하고 형평성도 꾀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지금은 연계제도에 따라 23만명이 최대 50% 덜 받는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내년 ‘국민연금 재정 재계산’ 때 연계제도 폐지 여부를 함께 논의하기로 했지만 대선공약인 폐지 쪽에 여전히 힘이 실려 있다.
내년 재정 재계산 때는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간의 역할 재정립을 둘러싼 논란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적잖은 연금 전문가들은 국민연금 기금이 지속 가능하려면 현재 9%인 보험료율을 12~16%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여권에는 2028년까지 가입기간 평균소득의 40%(40년 가입)로 낮아지게 돼 있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내년 45%에서 동결하자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소득대체율은 1988년 70%였다가 1999년과 2008년 두 차례 연금 개혁을 통해 60%, 50%로 낮아졌고 이후 매년 0.5%포인트씩 떨어지고 있다. 기금 규모와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보험료율을 올리기보다 점차 소진해 그해 걷어 그해 지급하자고 주장하는 인사들도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처한 상황은 녹록지 않다. 기금은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08년과 2013년 장기 재정추계의 밑바탕이 되는 성장률·금리 전망치 등을 너무 높게 잡고 글로벌 금융·재정위기가 맞물리면서 2008~2016년 9년간 당초 전망치보다 52조원 적은 수익을 냈다. 올해부터 2020년까지 4년 동안에도 추가로 73조원가량의 수익 차질이 예상된다.
급속한 저출산 고령화까지 맞물려 자구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2060년으로 예상됐던 기금소진 시기가 5년 안팎 앞당겨질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많다. 낸 것보다 훨씬 많이 받다 보니 미적립 잠재부채가 1,50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마저 나온다. 문재인 정부와 여권은 포퓰리즘 연금공약을 접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임웅재 보건의료선임기자 jael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