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와 대기업이 규제 속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하는 데 한계를 보이는 가운데 국내 대표 정보기술(IT) 기업인 네이버가 업종과 국경 등 기존의 틀을 뛰어넘는 시도로 신세계를 개척해가고 있다. 주력 사업인 검색뿐만 아니라 금융,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차 등 첨단기술, 온라인 쇼핑과 빅데이터 사업까지 아우르는 ‘광폭 행보’를 이어가면서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어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네이버는 지난 26일 이사회를 열고 5,000억원 규모의 미래에셋대우(006800) 자사주 매입, 4,000억원 규모의 데이터센터 건립, 수천억원대로 추정되는 제록스리서치센터유럽(XRCE) 인수 등 총 1조원이 넘는 투자안건을 의결했다. 금액도 크고 분야도 넓지만 속전속결로 빠른 결단을 내렸다. 빠른 속도로 변하는 시장과 글로벌 경쟁자들을 따라잡기 위한 파격적인 행보다.
네이버는 증권사와 손잡고 금융업에 발을 담갔다. 방식도 파격이었다. 네이버는 27일 국내 1위 증권사 미래에셋대우와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맞교환하는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을 진행했다. 기존의 IT사와 금융권들이 맺어온 포괄적 제휴방식을 뛰어넘는 방식이다. 지금까지 IT 기업이 금융사와 제휴를 맺을 때는 특정 사업·상품에 한해 협력을 모색하거나 합작법인을 세우는 형태가 많지만 네이버는 미래에셋대우와 자사주를 맞교환하면서 전사적 협업 관계를 맺었다.
네이버가 대형 증권사와의 제휴를 맺으면서도 다른 IT 기업인 KT(030200)와 카카오(035720)가 이미 진출한 인터넷은행 사업에는 도전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힌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이미 만들어진 쉬운 길은 가지 않겠다는 뜻”이라며 “인터넷은행 사업에 뒤늦게 뛰어들기보다는 첨단 IT를 접목한 창의적인 금융상품을 미래에셋대우와 개발하는 것에 주력하겠다”고 설명했다.
영역을 뛰어넘는 네이버의 광폭 행보는 이해진 창업주가 지난해 10월 당시 한성숙 서비스총괄 부사장을 신임 대표에 내정하면서 예고됐다. 이 창업주와 한 대표는 한목소리로 “네이버를 기술 플랫폼 기업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검색 기업에서 운영체제(OS) 및 AI 분야의 대표 주자로 거듭난 구글과 단순 e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였지만 첨단기술 접목을 통해 ‘유통 공룡’으로 진화한 아마존을 본보기로 삼아 세운 전략이다.
이후 네이버는 AI와 자율주행차 등 기존 이동통신사나 자동차 업체에서나 시도할 것처럼 보였던 첨단기술 개발에 주력했다. 네이버의 AI 음성 비서 스피커 ‘웨이브’는 이미 다음달이면 일본 시장에서 출시될 예정이고 자회사 네이버랩스의 자율주행차는 2월부터 국토교통부로부터 도로주행 임시허가를 받아 운행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네이버의 상징물을 ‘초록색 검색창’으로 인식했던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AI와 자율주행차 등이 네이버의 중장기 미래를 책임질 기술이라면 e커머스(전자상거래)와 가상의 데이터 보관 시스템인 클라우드 서비스는 당장 ‘캐시카우(현금창출원)’가 될 수 있는 새로운 먹거리 분야다.
네이버는 풍부한 상품 검색 데이터베이스(DB)와 간편결제(네이버페이) 연동 기능 등의 장점을 활용해 기존 오픈마켓과 소설커머스를 능가하는 쇼핑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아마존과 IBM·마이크로소프트(MS)·오라클 등 세계적 업체가 과점 중인 국내 클라우드 시장에서도 한글을 기반으로 한 편리한 사용자 환경을 무기로 점유율을 조금씩 넓히는 추세다. 전날에는 경기도 용인에 4,800억원을 투입해 제2의 데이터센터를 구축한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김민정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원은 “네이버가 국내에서 자본력과 뛰어난 콘텐츠를 바탕으로 AI 등 첨단기술 생태계를 선점할 가능성이 높다”며 “단기 수익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투자 건도 보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인 결실을 거둘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