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지난 23일 취임식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례적으로 파워포인트(PPT) 슬라이드를 띄워놓고 취임사를 한 형식뿐 아니라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한 내용도 큰 관심을 모았다.
김 장관은 이 자리에서 정부의 6·19부동산대책이 수요 억제에만 치우치고 공급 부족 해소 방안이 빠졌다는 일각의 지적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최근 집값 과열의 원인은 공급 부족이 아니라 다주택자의 투기 수요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주택 소유별 거래량 증감률’을 제시했다.
김 장관에 따르면 올해 5월 5주택 이상 보유자가 집을 산 비율은 전년 동월 대비 가장 두드러지게 증가했다. 서울 강남 4구에서만 무려 53%가 증가했고 강남 58%, 송파 89%, 강동 70%였다.
취임사만 보면 마치 5주택 이상 보유자들이 강남 집값은 다 올려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거래량 자체를 살펴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실제로 5월 강남 4구에서 집을 가장 많이 산 계층은 무주택자였다. 무주택자의 거래량은 2,103건으로 전체의 53.9%를 차지했다. 반면 5주택 이상 보유자의 거래량은 98건, 비중은 2.5%에 불과했다. 과연 전체의 2.5%를 놓고 강남 집값 급등의 주범으로 볼 수 있을까.
김 장관은 거래량 증감률이라는 ‘통계의 착시’를 이용해 다주택자들이 마치 투기세력인 양 몰아갔다. 5주택 이상 보유자의 강남 4구 거래량 증가율 53%는 지난해 5월 64건에서 1년 후 98건으로 늘어난 데서 나온다. 이들의 절대적인 거래량 자체가 적다 보니 34건이 늘어났는데도 증가율은 큰 폭으로 뛴 것으로 보인다. 반면 무주택자의 강남 4구 거래량은 1년 전보다 175건 늘었는데도 증가율은 9.1%에 그친다.
최근 집값의 이상 과열은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나타났을 가능성이 높다. 이전 정부가 대출 규제를 완화한 영향도 있을 것이고 일부 인기 있는 지역은 공급에 비해 수요가 몰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시중의 유동성이 수익을 낼 만한 곳을 찾다가 부동산으로 유입된 측면도 있을 것이다. 김 장관이 지적했듯이 막대한 부를 축적해 여러 채의 집을 소유한 다주택자나 투기세력이 몰려 집값을 올렸을 가능성도 있다.
김 장관은 취임사에서 국토부 직원들에게 “현장과 괴리된 통계는 정부에 대한 불신만 키운다”며 “숫자로 현실을 왜곡하지 말자”고 당부했다. 하지만 정작 부동산정책의 수장인 자신은 취임 첫날부터 숫자의 함정에 빠져 현실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집값 상승의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온 6·19대책이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26일 한승희 국세청장 후보자는 부동산 다주택자의 임대소득을 전수조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6·19대책에 이은 제2의 부동산 대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주택자들이나 29세 이하의 젊은 층이 불법·편법으로 부동산을 거래해 부당한 이득을 취했다면 당연히 국세청 조사로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이들을 때려잡는다고 집값이 안정될 것으로 생각한다면 대단한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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