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① 獨은 '탈핵'에 15년 걸렸는데...非전문가 3개월만에 '졸속 결정'

시민배심원단에 공 넘긴 '신고리 5·6호기'...4대 문제점은

② 과학적 근거 없이 '에너지 안보' 여론재판

③ 매몰비용 2.6조...소송 땐 천문학적 '혈세'

④ 최고 전문기구지만...존재감 없는 '원안위'

2915A04 신고리


문재인 정부 탈(脫)원전 정책의 핵심인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결정권이 시민배심원단의 손으로 넘어갔다. 국민의 혈세로 메워야 할 매몰비용부터 전기요금 인상 여부, 전력수급 차질 문제 등 산적한 과제를 풀 마스터플랜도 세워지지 않은 상황에서 에너지 안보가 여론재판으로 결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의 4대 문제점을 짚어본다.


◇전문가 배제 공론화委 3개월 뒤 결정=정부가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위한 사회적 합의 방법으로 내놓은 것은 공론화위원회였다. 공론화위는 이해관계자나 에너지 분야 전문가가 아닌 ‘중립적’ 인사 10명으로 꾸려진다. 활동기간은 3개월에 불과하다. 쉽게 말해 비전문가로 꾸려진 위원회가 3개월 만에 공정률 30%에 달하는 원전의 운명을 결정짓는 셈이다.

외국과 비교해보면 어떨까. 먼저 공론화위의 참고 모델인 독일이다. 독일은 지난 1986년 러시아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계기로 원전 폐지 논의가 시작됐다. 이후 1998년 사민·녹색당이 집권에 성공했고 2년이 지난 2000년 신규 원전 건설을 금지하는 내용의 ‘원자력 합의’를 도출해냈다. 원자력법 개정은 2002년이었다. 원전 17기의 가동을 모두 멈추겠다는 ‘탈핵’ 선언이 나온 것은 2011년. 모두 15년의 세월이 걸렸다. 지난달 탈원전을 결정한 스위스도 1984년부터 공론화를 시작했다. 1984년부터 33년간 사회적 논의를 거쳤고 이 과정에서 모두 다섯 번 국민투표에 부친 끝에 국민 58%의 찬성으로 탈원전을 결정했다.


◇결론은 ‘시민배심원단이’…정부 책임 회피 논란=공론화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하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결론을 시민배심원단에 맡긴 것도 문제다. 전문가들이 과학적 근거 없이 특정 집단의 ‘인식’에 따라 정책이 결정되는 것에 우려를 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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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학계에서 지적하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원전으로 인한 피해 가능성이 부풀려졌다는 것.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문 대통령이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피해자가 1,368명이라고 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쓰나미 피해로 죽은 사람은 있어도 원전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해 일본 외무성도 유감을 표명했다. 두 번째는 국민이 감내해야 할 비용이 막대하다.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은 당장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으로만 연간 최대 4조6,000억원의 발전비용이 든다고 추산했다. 정부가 책임 회피를 위해 신고리 5·6호기의 운명을 여론재판에 넘겼다는 비난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 교수는 “탈원전은 정책이라 책임이 없지만 신고리 5·6호기는 건설 중단이기 때문에 책임이 있다”며 “대통령도 정부도 책임을 안 지려고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매몰비용 2조6,000억원…소송비용까지 천문학적 ‘혈세’=신고리 5·6호기의 건설이 중단되면 수조원의 혈세가 투입돼야 한다. 신고리 5·6호기의 총사업비는 8조6,000억원. 이미 토지보상에 1조원, 공정률을 28.8%까지 올리는 데 1조6,000억원의 공사비가 들어갔다. 회수가 불가능한 매몰비용만 2조6,000억원인 셈이다.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기업과의 계약 파기로 발생하게 될 손해배상 청구비용도 막대하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위해 각 기업과 계약한 금액은 4조9,000억원에 달한다. 이미 집행된 기성액을 빼더라도 3조3,000억원이 남아 있다. 한수원 관계자는 “공사 중단 결정으로 계약이 파기될 경우에는 계약서에 명시돼 있는 대로 배상금액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추가로 수조원의 혈세가 들어가야 하는 셈이다.

◇위상 강화 말했지만…보이지 않는 ‘원안위’=원전 정책의 방향을 결정해온 전문가집단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보이지 않는 것도 문제다. 원안위는 7명으로 구성된 대통령 직속 상설기구로 2011년 설립됐다. 문 대통령도 원안위의 위상 강화를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원자력 안전규제를 관장하는 최고 전문기구임에도 이번 탈원전 논란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환경대학원장은 “사용 후 핵연료 공론화위원회에도 전문가들이 들어가 있다”며 “원안위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떨어져 있고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결정할 법적 권한이 없어서 공론화위를 만든 것 같은데 전문가들이 아닌 사람이 결론을 내리면 국민이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세종=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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