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6월 29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연방 고속도로법에 서명했다. 이 법의 골자는 고속도로 41,000 마일(66,000km) 건설. 초기 10년 동안 비용 250억 달러의 지출 도 내용으로 담았다. 당시까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공공사업이었다. 총연장 77,017㎞, 거미줄처럼 촘촘한 오늘날 미국의 ‘주간(州間) 고속도로(Interstates Highway)’ 망이 이 법의 제정으로 깔리기 시작했다. 법 제정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야당인 민주당이 지배하는 의회의 벽도 두껍고 높았다. 하원에서는 388 대 19로 압도적인 지지들 받았으나 상원 표결 결과는 41 대 39. 간신히 넘었다.
상원 표결이 박빙이었던 이유는 철도업체들의 입법 반대 로비가 집중됐기 때문. 19세기 초중반부터 미국 교통망의 중추로 군림해온 철도업계는 환경 파괴와 유류 낭비 등 온갖 이유를 들어 반대 논리를 펼쳤다. 물론 하원에도 로비스트들이 따라 붙었다. 석유와 운송업체, 건설업체들은 로비스트 200여 명을 고용해 입법안에 찬성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한창 늘어나던 교외 주택을 공급하는 주택업체도 고속도로 건설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역시 개별의원들에게 설득 작업을 펼쳤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고속도로 건설에 매달렸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첫째, 군사적인 측면에서 고속도로가 반드시 필요하고 믿었다. “철도는 유용한 대중교통 수단임이 틀림없으나 유사시 폭탄 한 방으로 기능을 상실할 수 있다. 하지만 도로는 소련의 폭격에도 견딜 수 있다”는 논리로 비판론에 맞섰다. 마침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 개발 경쟁이 본격화하고 핵 전핵전쟁에 공포가 고개 들기 시작한 시기.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고속도로 건설 청사진은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았다. 연방 고속도로법이 ‘방어 및 주간 국가 도로(National Interstate and Defense Highways Act)’라는 다른 명칭을 갖고 있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두 번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자동차와 도로에 대해 특별한 기억이 있었다. 1919년 처음으로 워싱턴에서 시애틀까지 대륙 횡단에 나섰던 군용차 81대 행렬을 이끌었던 장본인이 29세 나이의 아이젠하워 대위였다. 자동차를 이용한 원거리 군사작전의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자동차 부대는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도로 사정이 열악했던 탓이다. 트럭이 진흙에 빠지고 길이 끊어진 지형도 많았다. 군용 트럭도 툭하면 차축이 나가고 팬벨트와 브레이크가 고장 났다. 천신만고 끝에 임무를 완수한 아이젠하워 대위는 ‘차의 품질 개선도 필요하지만, 엉망인 도로가 최대 장애물’이라는 보고서를 올렸다. 청년 장교의 경험이 27년 만에 국가 정책에 반영된 셈이다.
국가적인 주간 고속도로 건설 구상에는 정치적인 계산도 없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재선을 위한 선거전을 치르던 아이젠하워는 도심을 떠나 교외 주택에 자리 잡기 시작한 백인 중산층의 관심을 이끌어낼 만한 이슈가 필요했다. 아이젠하워는 결국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두 번째 임기에 들어갔다. 아이젠하워가 직접 경험하고 오랫동안 생각했던 고속도로 건설을 집권 초기에 실시하지 않고 선거전이 본격화하는 시점에 시작했다는 점이 이 같은 평가를 불렀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본격화한 고속도로 건설은 미국 경제와 문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대중 교통수단이 급격히 사라지고 자동차 보유가 늘어났다. 지난해 말 미국의 자동차 보유 대수는 약 2억 6,360만 대로 전 세계 보유량(약 9억 8,000만 대)의 26.9%를 차지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소매 유통업체인 월마트는 고속도로 주변에 집중적으로 매장을 설치하며 급성장했다. 맥도널드 같은 외식업체도 마찬가지. 고속도로와 교외 주택을 겨냥한 프랜차이즈 영업이 유통과 물류, 소매, 음식업의 주류로 떠올랐다. 광활한 영토인 미국이 같은 정체성과 동일한 문화를 누리는 이유도 자동차를 통한 빈번한 이동과 교류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은 아이젠하워가 고속도로법을 만든 이래 약 50년 동안 1,290억 달러를 투입, 길을 닦고 길끼리 연결했다. 주간 고속도로뿐 아니라 각주가 건설한 지방도로 역시 크게 늘어났다. 미국의 도로 총연장은 672만 2,347㎞로 인도(547만 2,144㎞), 중국(469만 6,300㎞)을 제치고 세계 1위다. 인도와 중국은 비포장도로가 많은 반면 미국의 도로는 대부분 포장돼 있다. 주목할만한 사실은 중국의 고속도로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 고속도로만 기준으로 치면 중국이 131,000㎞로 부동의 1위다. 2~3년 뒤에는 중국의 고속도로가 미국의 2배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 1988년까지 중국에 고속도로가 하나도 없었던 중국은 한 해에 4,000~1만㎞를 새로 깔아, 지난 2011년 미국을 추월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의 고속도로 총연장은 7개 구간이 완공된 올해 말 4,765㎞, 오는 2020년에는 5,000㎞에 도달할 전망이다.
고속도로가 왜곡된 경제 구조를 낳았다는 견해도 있다, 제레미 리프긴의 ‘수소 혁명(원제:Hydrogen Economy, 2002년 출간)에 따르면 미국은 매년 도로건설에 730억 달러(원화 약73조 원), 도로관리에 200억 달러, 기타 도로서비스에 480억 달러, 고속도로 건설원금 상환 및 채권이자에 63억 달러를 지출한다. 막대한 자금을 들여 건설한 도로 인프라에 오히려 발목이 잡혀 있다는 얘기다. 업체와 공무원, 정치인들이 얽히고설켜 필요없는 공사를 일으키는 일본 토건족(土蹇族)이 미국에도 있는 모양이다.
/권홍우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