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종교적 병역거부 대법 유죄 '쐐기' 1주일만에 하급심서 무죄 판결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대법원이 유죄를 확정하는 판결을 내린지 일주일만에 하급심에서 또다시 무죄 판결이 나왔다. 병역거부자 처벌 원칙을 고수하는 대법원과 달리 법조계 안팎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청주지법 형사4단독 이지형 판사는 훈련소 입소 통지를 받고도 소집에 응하지 않은 혐의(병역법 위반)로 기소된 이모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29일 밝혔다. 이 판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안 마련이 필요하고, 그것이 가능한 데도 불구하고 국가가 이를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국가의 안전보장이라는 헌법 가치만을 실현하고자 양심의 자유를 제한한다면 헌법의 과잉금지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연간 징집 인원의 0.2% 정도인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가 집총 병역에 응하지 않는 것 자체가 군사력의 저하를 가져와 국가의 안전보장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위태롭게 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 판사는 또 “양심의 자유와 병역의무 이행의 형평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미 많은 나라가 대체복무제를 도입해 성공적으로 시행해 오고 있다”며 “양심을 빙자한 병역기피자 양산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대체복무의 강도를 높이고, 전문가 사전심사 제도를 마련하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유죄 확정판결을 내렸지만 무죄를 선고하는 하급심 판결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28일에는 서울남부지법에서도 종교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이 판사와 같은 판단으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지난 15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신모(22)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종교적 병역거부는 현행법상 처벌 예외사유인 ‘정당한 사유’가 아니며,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하지 말라는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의 권고안은 법률적 구속력을 갖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올해 들어 대법원이 종교적 병역거부자의 실형을 확정한 13번째 사례이기도 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법원의 처벌 방침이 확고한 가운데 최근 하급심에서 무죄로 판단하는 사건이 급속히 늘면서 법조계 안팎에서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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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이래 종교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하급심 판결은 전국적으로 33건이다. 이중 16건이 올해 쏟아진 것도 달라진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병역거부자에 대한 형사 처벌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대체복무제 도입에 관한 논의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지난 5월 종교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제도를 신설하는 내용의 병역법 및 예비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대체복무요원의 업무를 중증장애인 수발, 치매 노인 돌봄 등 사회복지, 보건·의료, 재난 복구·구호 분야에서 신체적·정신적 난도가 높은 업무로 지정했다. 또 복무 기간을 현역 육군 병사의 2배로 규정하고, 엄격한 복무관리를 위해 반드시 합숙 근무를 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일각에서는 헌법재판소가 종교적 병역거부 사건의 위헌성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지 결과를 지켜보자는 의견도 많다. 헌재는 현재 관련 사건 28건을 심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형사처벌의 근거조항인 병역법 제88조 1항에 대해 이미 2004년과 2011년 두 차례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와 관련 김이수 신임 헌재소장 후보자는 지난해 7월 헌재가 이 사안에 관해 각계 의견을 들으려 공개변론을 열었을 때 “(종교적 병역거부자의 형사 처벌이) 부끄러운 인권 현실로 지적되고 있는데, 국가가 앞장서서 대체복무제를 도입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의견을 내기도 했다.

이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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