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靑 '원전수출지침' 곧 내놔...정부-업계 "기다리고 있다"

정부·기업 "해외서도 협상 주저"



청와대가 원전수출 지침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와 업계는 원전수출 움직임을 중단한 채 청와대의 지침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원전시장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29일 “청와대의 원전수출 지침에 따라야 해 현재 수출 협상을 사실상 중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원전수출을 어떻게 할지 지침을 만들고 있는데 그것에 따라 수출 추진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원전 수출 협상은 사실상 중단돼 있다. 신고리 5·6호기의 잠정중단을 해외에서는 ‘본격적인 탈핵’으로 읽고 협상마저 주저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원전을 폐기하는 국가가 수출한다는 게 이치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수출과정에서) 금융지원 등 국가적 지원을 받는 데 우려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 등은 지난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에 처음 원전을 수출한 데 이어 현재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사업자인 뉴젠의 지분 인수와 체코 원전 수주 등을 추진하고 있다. 뉴젠 지분인수 협상을 진행 중인 한전은 현재 여러모로 인수전에서 유리한 상황이지만 ‘탈원전’이라는 복병을 만나 전전긍긍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뉴젠 지분 인수나 체코에서의 수주협상이 상당히 진척되고 있었다”면서 “하지만 최근의 급속한 탈원전 움직임이 수주작업에 찬물을 끼얹은 꼴”이라고 말했다.


英 뉴젠과 모델변경 가능성 커 협상진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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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5·6호기’ 중단으로 기회 발로 차

한전은 무어사이드 원전에 사용될 원자로를 계획된 웨스팅하우스의 ‘AP1000’에서 한국 자체 기술로 개발한 ‘APR1400’로 대체할 경우 인수할 수 있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APR1400으로 바뀌면 두 번째 원전을 수출할 최상의 기회가 마련되는 셈이다. 오는 8월 모델 선정을 앞둔 영국도 긍정적인 검토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탈원전’이라는 복병이 등장했다. 한전은 정부 눈치를 보느라 실무협상 벌일 뿐 그 이상은 진도가 나가지 못하고 있다. 전력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미국·일본 등 원전 선진국들이 인수전에서 모두 빠진 상태”라며 “영국 정부도 우리에게 팔려고 하는데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니 아쉬움이 크다”고 했다.

체코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역시 전력업계가 유력하게 기대하는 원전 수출국들이다. 체코는 2030년까지 2~3기(2~3GW), 남아공은 같은 기간 총 6~8기(9.6GW)의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으며 올해 말 각각 사업자 선정과 사업제안요청서(REF) 공고 등의 절차를 진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원자력협회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신규 건설을 계획 중인 곳은 27개국 164기에 이른다. 수주 경쟁은 원전 기술을 보유한 한국을 비롯해 러시아·중국 등이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이나 일본 등 원전 선진국들이 모두 빠지면서 원전 수주시장은 블루오션이 돼 있다”며 “유리한 고지에 한국이 올라 있는 것은 맞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의 급격한 탈원전정책으로 원전 수출은 사실상 멈춘 상태다. 정치권 일부나 시민단체 등이 원전 수출 반대 입장을 내 쉽지 않다. 원전 수출은 단순히 기술과 시공능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워낙 덩치가 큰데다 시공·운영기간 등을 감안할 때 금융 등 국가 차원의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수주가 불가능하다. 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원전 수주전은 국가별 대항전인데 청와대가 아직 지침을 내리지 않아 모두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에서만 원전을 그만 지을 것인지, 아니면 수출까지 하지 않겠다는 것인지가 불분명해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가 시민들에게 신고리 5·6호기의 운명을 맡기며 최종 결정 전까지 건설을 잠정 중단한 것이 세계 원전시장에 부정적인 신호를 줬다고 지적한다. ‘원전을 더 이상 짓지 않는 나라’가 원전을 제대로 만들고 사후 서비스까지 하겠냐는 의구심을 갖게 했다는 것이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이미 원전을 수주한 UAE에서 한국이 원전을 더 이상 짓지 않으면 원자로 부품 공급이 제대로 될 것이냐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며 “원자로에 들어가는 제품들이 다품종 소량 생산하는 것들인데 당장 신규 원전 건설이 취소되면 관련업계가 업종을 전환할 수밖에 없어 우리나라 원전 산업의 서플라이체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원전 수출은 국가 간 경쟁인데 원자력 기술을 보유해도 정부의 의지와 자금조달 문제 등 해결할 게 많아 앞으로의 원전 수출이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세종=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강광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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