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처의 올해 불량식품 근절 추진체계 운영예산은 15억1,000만원으로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정부안 대비 27%나 깎였다. 해외제조업체 현지실사를 위한 수입식품안전관리 예산도 정부 제시안(35억400만원)에서 2억7,600만원 삭감됐다. 당장 효과를 내기는 어렵지만 효율적으로만 집행되면 국민건강을 지키고 건강보험 같은 정부 지출을 최소화할 수 있는 항목들이다.
생활 속 안전 예산도 그렇다. 하반기에만 경찰 1,500명을 더 뽑기로 했지만 기동순찰대 운영예산은 국회에서 11억9,800만원 줄었다. 최종적으로 117억원으로 마무리된 어린이 보호구역 내 시설개선 예산의 경우 당초 정부 제시안은 33억6,000만원으로 전년과 비교해 48%나 적었다. 그만큼 중요도를 낮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 예산집행의 효율성을 근본적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40여년째 유지되고 있는 예산 편성의 기본 패러다임부터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전적·예방적 성격의 지출을 늘리고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기 위한 소프트 인프라 구축 사업에 더 많은 재원을 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의 올해 안전·공공 부문 예산은 18조원으로 전년 대비 3.1% 증가했다. 전체 평균 3.7%를 밑돈다.
구체적으로 보면 건강 부문은 사전적·예방적 예산의 중요성이 가장 큰 분야다. 건강보험의 경우 내년부터 적자로 돌아선 뒤 2025년에는 손실 규모가 무려 25조1,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감안하면 건강검진 대상 항목 확대와 효율성 제고를 통한 선제적인 예산 절감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많다. 건강보험공단이 제공하는 일반 검진은 시력과 청력·혈압·흉부질환·혈액검사 등인데 C형 간염과 폐암 검진은 시범사업으로 하고 있다. 자궁경부암은 공단이 검진비용을 전액 부담하지만 간암과 위암·대장암 등은 수검자가 10%를 내야 한다. 지난해 건강검진 지출액은 1조3,815억원으로 올해는 1조6,050억원이 편성돼 있다. 이왕재 나라살림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건강검진을 확대해 질병을 초기에 발견하면 예산과 사회적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하공동구 사업도 마찬가지다. 전기와 가스·수도·통신시설·하수도시설을 한데 모은 지하공동구를 설치하면 수리나 점검 때마다 도로를 파헤치지 않아도 된다. 도시개발구역이나 택지개발지구, 200만㎡ 이상의 지역에 의무적으로 설치하게 돼 있다. 연례적으로 반복되는 예산지출을 줄일 수 있어 경북 상주 같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자체적으로 공동구를 설치하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다. 현재 서울에는 여의도와 상암동 등 7개의 공동구가 설치돼 있다.
‘뒷북예산’도 사전적·예방예산 위주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가뭄이 대표적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매년 충남 지역의 가뭄이 심각함에도 올 들어서야 850억원 규모의 아산호와 삽교호·대호호 수계 연계사업을 기재부에 요청했다. 뒤늦게라도 사업을 시작한다는 데 의미가 있지만 예비타당성 조사를 포함한 예산반영과 집행기간을 고려하면 효용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복지와 일자리 지출은 낭비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투자의 의미도 있다는 인식을 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 지출 확대→저소득층 소득증가→소비 증가→경기활성화’라는 선순환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올해 복지예산은 129조4,830억원, 일자리 예산은 17조1,000억원으로 추경분을 더하면 22조5,000억원으로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지만 그에 따른 효과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는 뜻이다.
4차 산업혁명 대비를 위해서는 연구개발(R&D)뿐만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관련 법과 제도, 개선을 위한 예산지원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왕재 선임연구위원은 “예산지출을 비용으로만 보다 보니 복지와 일자리 지출 확대를 극히 꺼리게 되는데 재정 투입의 목표와 기대효과를 새롭게 볼 필요도 있다”며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해서는 R&D에만 쏠려 있는 예산 지원도 보다 다양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