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니라 아들이 운전한 거예요. 저는 운전하지 않았어요.”
교통사고를 내 상대방 운전자에게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히고 도주한 혐의 등으로 검찰에 송치된 A씨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자신은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아들인 B씨가 자신의 차량을 몰고 가다 사고를 냈다는 것이다. B씨 역시 자신이 운전하다 사고를 냈다고 주장했다.
경찰에서 검찰로 넘어온 송치 증거들은 A씨가 운전자였다고 가리키고 있었다. 사고 차량의 명의자는 A씨였고 A씨의 휴대전화가 사건 당일 사고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게다가 A씨는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를 낸 경험이 여러 차례 있었다. 사고가 나기 4개월 전에도 음주운전을 해 운전면허가 취소된 상태였다. 누범 기간 술에 취해 운전대를 잡은 A씨가 구속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의심이 드는 상황이었다.
검찰은 경찰 조사에서도 피의자 특정이 어려워 송치까지 8개월이나 걸린 사건이라 신중히 살펴봤다. 앞서 경찰이 폴리그래프(거짓말탐지기)까지 동원해 조사한 결과 A씨는 ‘진실’ 반응이 나왔지만 아들인 B씨는 ‘거짓’ 반응이 나왔다. 거짓말탐지기 조사 결과는 A씨와 B씨 모두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두 사람 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보고 A씨를 ‘기소’ 의견으로, B씨는 ‘혐의 없음’으로 송치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모든 증거들이 A씨의 음주운전 전과에 따른 선입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지 의심했다. 선입견을 걷어내고 남은 객관적 증거는 CCTV뿐이었다. 사고 후 운전자가 내리는 모습이 촬영된 CCTV의 화질은 40만화소 정도로 피의자를 특정하기 어려웠다.
검찰은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과학수사1과에 CCTV 화질 개선 영상분석 감정을 의뢰했다. 대검 과학수사과는 특히 운전자가 내려서 도주하는 4초 정도의 영상을 집중 분석했다. 과학수사과는 4초 분량의 영상을 초당 30장씩 프레임별로 스틸컷으로 추출했다. 총 120여장의 스틸컷을 뽑아낸 뒤 확대 및 화질 개선 작업에 들어갔다. 프레임마다 정보 손실 정도가 다른 만큼 120장 스틸컷 모두를 다른 방식으로 작업해야 했다.
결국 사건 발생 후 1년여 만에 진범이 가려졌다. 120여장의 스틸컷 중 일부에서 아들이 운전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당시 B씨는 A씨의 차량과 휴대전화를 몰래 가지고 나와 자신의 집으로 가던 중 사고를 내고 도주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 법원도 CCTV 등 객관적 증거를 인정하며 B씨에게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