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사면초가' 한국 자동차 산업

성행경 산업부 차장

성행경 차장


사면초가(四面楚歌). ‘사방에서 들리는 초(楚) 나라의 노래’라는 뜻으로 적에게 둘러싸인 상태이나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처지라는 고사성어다. 지금 한국의 자동차 산업이 딱 이 꼴이다. 내수 판매는 부진하고 수출은 늘었지만 해외 판매는 감소세다.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따른 보복으로 실적이 반 토막 났고 금리 인상으로 소비 여력이 줄어들어 성장 정체에 진입한 미국 시장에서도 영 신통치 않다. 여기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부르짖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동차를 대표적인 무역 역조 품목으로 지목하면서 수출 전선에도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그나마 유럽은 순항하고 있지만 일본과 유럽연합(EU) 간에 추진되고 있는 FTA 협상이 타결될 경우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

이처럼 사방에서 위기의 징후가 깜박이는데도 국내 차 업계의 대응은 너무 안일하다. 특히 노조가 그렇다.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임금을 받는데도 금속노조의 임금 요구안인 15만4,883원(호봉승급분 제외) 인상안을 사측에 던져놓고 언제라도 파업을 벌일 태세다. 기아차는 이미 통상임금과 관련한 사측의 제시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임단협 결렬을 선언했다. 꾸준히 철수설이 나도는 한국GM은 올해도 노조가 어김없이 쟁의조정신청을 냈다. 누적 적자가 2조원이 넘는데도 매년 임금 인상과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는 한국GM 노조에 대한 미국 본사의 인내심이 대단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제임스 김 한국GM 사장은 “올해 임단협 결과에 따라 한국GM의 입지가 변할 것”이라며 노조에 경고장을 날렸다.


자동차 산업은 고용뿐 아니라 부품 등의 연관 효과가 크지만 지난 1996년 현대차 아산공장을 마지막으로 국내 공장 설립이 20년 넘도록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강성 노조와 인건비 부담 때문에 해외에 공장을 짓다 보니 이미 해외 생산이 국내 생산을 넘어섰다. 세계 5위였던 자동차 생산량이 인도에 밀려 6위로 떨어졌고 멕시코에까지 추월당할 처지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력보다 당장의 임금 인상과 고용 보장에만 관심이 있으니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이러다가는 사망 선고를 받았다가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아 겨우 살아난 미국 ‘빅3’의 전철을 국내 차 업체들이 밟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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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서울대 교수는 저서 ‘가 보지 않은 길’에서 “조선업 불황과 대규모 구조조정 여파가 아직 남문고개를 넘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현대차를 덮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것은 한국 경제 전체에 밀려오는 쓰나미일 것”이라고 걱정했다. 한때 세계 1위라는 성취감에 취해 글로벌 조선 경기의 사이클 변화를 예측하고 미리 대비하지 못한 한국의 조선 산업은 지금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보호무역 확산과 중국 메이커의 추격, 자율주행·친환경차 확대라는 흐름 앞에서 과거의 성공 경험에 안주해 근본적인 변화에 실패한다면 현대차는 물론 한국 자동차 산업의 미래는 단연코 없다. ‘이기(利己)’와 ‘자만(自慢)’은 실패를 부른다. 초패왕의 패배가 증명하지 않았는가.

/saint@sedaily.com

성행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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