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조원 규모에 달하는 롯데케미칼(011170)의 말레이시아 현지법인 타이탄 기업공개(IPO) 공모투자에서 국내 기관투자가와 개인들이 배제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롯데케미칼이 금융 당국의 규제를 이유로 국내 투자자의 청약을 받지 않아 결과적으로 투자자들은 좋은 투자 기회를 잃었고 롯데케미칼은 원하는 만큼 투자를 받지 못했다. 금융 당국은 미국이나 영국 등 투자자보호제도가 잘 갖춰진 국가에 상장하는 기업이 국내 투자를 받을 때는 증권신고서를 생략하는 등 규제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대상이 아니다.
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이 지분 100%를 보유한 석유화학 자회사 타이탄은 오는 11일 IPO를 통해 말레이시아 유가증권시장에서 최대 1조2,600억원(신주발행)의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다. 구주를 합친 상장가치는 5조원으로 롯데케미칼은 이번 상장에 성공하면 2010년 약 1조5,000억원에 타이탄을 인수한 지 7년 만에 기업가치를 3배가 넘게 키운 셈이다.
그러나 막상 청약 분위기는 예상 밖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로이터 등에 따르면 타이탄은 지난 3일부터 수요예측에 들어갔지만 예상보다 자금이 몰리지 않아 가격과 수량을 낮출 것으로 알려졌다. 타이탄은 주당 공모가가 최대 8.0링깃(약2,142원)이 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수요가 낮은 가격에 몰리면서 6.5링깃(약 1,740원)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공모 주식 수도 최대 7억4,000만여주에서 5억8,000만여주로 줄었다.
이 같은 결과는 우선 최근 타이탄의 실적이 저조한 탓이다. 하나금융투자에 따르면 타이탄은 설비 문제 때문에 200억원의 비용이 발생하면서 2·4분기 영업이익이 시장 기대보다 11.8% 낮은 738억원에 그치며 공모 수요에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수요예측 흥행 실패의 원인은 국내 대기업의 100% 자회사지만 국내 투자가 사실상 막혔다는 점이다. 롯데케미칼은 4월 타이탄 상장 계획을 국내에 공시하면서 한국과 미국에서 공모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고 국내 증권사와는 주관 계약도 맺지 않았다. 이에 대해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공시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면서 국내 기업이 지분 20% 이상 가진 기업을 해외에서 상장할 경우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1년간 청약 공고나 권유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금융위원회는 2월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하겠다면서 실제로는 국내에서 증권신고서를 내지 않고 자금을 조달하는 ‘검은 머리 외국인’의 폐해를 막기 위해 해외 증권 발행 시 증권신고서 제출 요건에 지분 기준을 명시했다.
과거에는 발행회사가 자율적으로 판단해 국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큰 경우 국내 투자자가 정보를 알 수 있도록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게 했지만 두루뭉술한 규정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앞으로는 국내 기업이 20% 이상의 지분을 소유한 기업을 해외에서 상장할 때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든지 1년 후 구주 매출을 통해 국내 투자를 받을 수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해외에서 상장하더라도 국내 자금을 조달하려면 최소한 투자자 보호를 위해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라는 것”이라면서 “공모 수요가 아주 높다면 현지 증권사를 통해 투자하는 방법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규정 개정 이후 현재까지 해외 상장 기업 중 국내에 한 건도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을 정도여서 일부 규제 완화 요청이 나온다. IB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의 자회사지만 타이탄은 외국계 기업인데 400쪽 이상 분량의 증권신고서를 한국어로 번역해 제출하고 금융 당국의 간섭을 받는 일을 감수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수요가 높은 것도 아니어서 해외 투자만 받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세원 박시진기자 wh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