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현대차그룹이 진행하는 품질 인증인 ISIR(양산 전 초도제품 승인 절차) 검증을 마친 일부 특수강 봉강에 대해 조만간 상업 생산에 돌입한다. 인증을 마친 일부 강종에 대해서는 이미 양산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현대기아차에 부품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수천 개 강종에 대한 ISIR 인증을 마쳐야 한다”면서 “인증을 받는 대로 순차적으로 양산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지금까지 자동차에 들어가는 특수강을 세아베스틸 등 국내외 특수강업체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조달해 왔다. 하지만 현대제철이 이런 자동차용 특수강을 직접 생산하겠다고 나서면서 업계에서는 ‘안정적인 공급처에 만족하지 말고 글로벌 시장으로 공급처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룹 매출 비중이 20%에 달해 현대·기아차의 자동차 판매가 부진하면 현대제철의 이익도 덩달아 휘청이는 구조 때문이다.
이런 구조 탓에 현대제철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로 자동차용 강판 공급처를 다변화해 그룹 의존도를 낮추겠다고 공공연히 밝혀 왔다. 하지만 자동차용 특수강 시장에 뛰어들면서 대외적 약속의 의미가 퇴색했다는 지적이다. 철강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나마 건설경기가 뒷받침된 덕에 이익의 또 다른 한 축인 봉형강 수요가 견조해 전체적인 실적은 균형을 맞췄지만, 건설경기가 침체되고 현대·기아차의 판매가 부진한 상황이 계속되면 현대제철의 실적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현대제철은 올 상반기 쇳물을 만드는 데 필요한 철광석 가격이 상승하면서 자동차용 강판 공급가 인상 요인이 생겼지만, 수요처인 현대·기아차에 원자재 가격 인상을 온전히 전가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영업이익률이 지난 1·4분기엔 직전 분기보다 0.7%포인트 낮은 7.6%를 기록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를 대상으로 강판 가격 인상을 관철시킨 여타 철강사들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현대제철은 4개월여를 끈 가격 인상 협상 끝에 지난달 당초 계획했던 ‘톤당 13만원 인상’의 절반에 불과한 6만원 인상에 만족해야 했다.
현대제철의 자동차용 특수강 인증이 늦어지는 데 대해서도 말이 나온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말까지 주요 특수강 제품에 대한 인증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인증 완료가 지연되자 일각에서는 ‘품질에 민감한 현대·기아차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특수강은 일반 철강재와 달리 오랜 기간 제조 노하우가 쌓여야 안정적인 품질이 보장된다”면서 “이제 막 시험 생산에 들어간 현대제철 제품이 현대·기아차를 만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