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성공은 증명하는 자리고, 두번째부터가 성과를 만드는 자리죠, 만화가라는 직업 자체가 증명하고 또 증명하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웹툰 ‘은밀하게 위대하게’로 유명한 최종훈(필명: HUN) 작가는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첫 작품의 성공보다 두번째 작품의 성공이 훨씬 힘들다는 뜻의 ‘소포모어 징크스’부터 언급했다. 하지만 최 작가는 한창 그 징크스를 깨는 중이다. 그의 두번째 웹툰 ‘나빌레라(글: HUN, 그림: 지민)’는 반응이 폭발적이다. 소설가 은희경 등 웹툰의 불모지였던 중장년층까지 팬으로 흡수했고 최근 출간된 단행본의 인기 또한 드높다. 웹툰계에서 성공하기 가장 어려운 장르로 꼽히는 따뜻한 가족물 ‘나빌레라’로 소포모어 징크스를 가볍게 넘어서고 있는 최종훈을 만났다. 인터뷰엔 공저자 김지민(필명: 지민) 작가도 함께 했다.
최 작가의 전작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700만에 가까운 관객을 끌어모은 ‘은밀하게 위대하게’다. 남파된 간첩이 동네 바보로 숨어 지낸다는 이야기다. ‘나빌레라’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왜 하필 간첩 이야기의 후속작으로 할아버지의 발레 이야기인 ‘나빌레라’를 만들게 됐는가”란 물음에 최 작가는“‘나빌레라’는 5년 전부터 기획했던 작품”이라 운을 떼며 “‘가족에 관한 감성’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만큼 잘 꺼내기만 하면 좋은 반응이 있을 것 같았다”고 답했다. 이어 “결국 (가족애라는) 보편성과 (발레라는) 특이성을 결합하는 것이 내 구상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소포모어 징크스를 극복한 비결을 묻자 손사래를 치며 “이제 겨우 10단계 중 1~2단계를 통과한 수준이다”라고 답한 그는 “사실 이마저도 ‘통과해서 다행이다’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며 “설레발 치지 말고 차근차근 계단을 올라간다는 마음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나빌레라’는 발레를 배우려는 할아버지와 축구 선수의 꿈을 접고 뒤늦게 진로를 바꾼 23세의 발레리노 채록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김 작가는 주인공 채록에 대해 “삶이 쉽게 풀리지 않아 지하방에서 사는 채록의 모습을 사실 우리 나이의 친구들 대부분 겪지 않나”라며 “굉장히 짠하다는 느낌도 들어 그림을 그리면서도 감정이입이 많이 됐다”고 밝혔다. 김 작가 본인 역시 어릴 때 운동선수를 꿈꿨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중학교 때 진로를 바꿨단다. 반면 최 작가는 채록이나 할아버지가 아닌 ‘성산’이란 캐릭터에 애착이 가장 많이 간다고 했다. 뒤늦게 민망한 복장과 함께 발레를 배우려는 아버지가 못마땅해 아버지에게 못된 말도 서슴지 않는 장남이다. 그는 자신이 만화가가 되겠다고 이야기했을 때 가장 크게 반대했던 큰형을 모티프로 만든 ‘성산’에 대해 “고지식하고 꼰대 기질이 있지만, 바른 사람”이라 설명했다. 이어 “결국 성산도 자신의 아버지가 싫어서 말리는 게 아니지 않냐”고 물으며 “독자들에게는 미움을 많이 받지만, 친형을 생각하며 그리는 만큼 가장 애착이 많이 간다”고 했다.
웹툰에서 두 명의 작가가 공동으로 작업하는 작품은 흔하지 않다. 어느 작업이든 두 사람이 함께 일하다 보면 갈등이 생기곤 한다. 하물며 웹툰에서 좋은 호흡을 유지하는 비결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최 작가는 이에 “돈 때문에 싸우지만 않으면 절반 이상 성공한 것”이라며 웃었다. 이어 “발레의 섬세한 몸짓에 세심한 감성까지 표현하려면 김 작가의 그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번 작품을 위해 그림체까지 바꿨다고 밝힌 김 작가 역시 “스스로 만족할 만큼의 작품을 만들지 못하면 화가 나는 만큼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나빌레라’는 웹툰이란 장르에 발을 내딛는 첫 작품이다. 이전에는 일본의 잡지사에서 그림을 그렸다. 최 작가는 “결국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며 “영화로 치면 김 작가가 촬영감독 겸 조명감독 겸 주연배우인 셈인데 이번 작품으로 김 작가를 탐낼 감독이 많아질 것”이라 치켜세웠다.
전작처럼 작품을 영화에 접목할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최 작가는 “만들고 싶다고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드라마나 영화 제작사에서 제안이 많이 오긴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섣불리 계약해서 이도 저도 아닌 콘텐츠가 되는 것만은 막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진 최종훈의 마지막 말엔 힘이 실렸고 남다른 책임감이 묻어났다. “전 의심한 적 없습니다. 단행본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고, 2차 창작물도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김 작가가 이렇게 훌륭하게 그리고 회사도 믿어주기로 했으니까, 저만 잘하면 됩니다.”
사진제공=만약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