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급’ 미사일 도발에 따라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한 문재인 대통령의 독일 연설도 대폭 수정될 전망이다.
북한 제재·압박과는 별개로 대화 기조는 유기한다는 방침에 따라 대화의 복원을 골자로 한 담론을 내놓으려 했으나 현 상황에서 그런 메시지는 먹혀들지 않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이번 독일 방문 중에서 가장 관심이 쏠렸던 일정은 쾨르버 재단 초청 연설이었다. 독일이 베를린 장벽을 허물고 통일을 이룬 곳인 만큼 한반도 평화 구축 구상을 밝힐만한 명분과 조건이 충분했다. 청와대는 민주정부 10년 때 남북 간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던 수준을 회복하는 것을 골자로 연설을 준비했다고 전해진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동의도 받아낸 이상, 독일서 밝힐 문 대통령의 ‘쾨르버 구상’의 비중은 과거와 다를 것이라는 예측도 제기됐다. 그러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청와대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개발에 성공한다면 미국 본토까지 타격할 수 있는 ICBM 발사 성공을 북한이 주장하는 상황에서 과거의 화해 분위기로 돌아가자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이 됐다. 국민은 물론이고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열강의 동의를 얻기도 어려워 보인다.
청와대 측도 이 같은 분위기를 인정했다. 5일 청와대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쾨르버 연설문’이 대폭 수정됐다”며 “‘베를린 선언’ 수준으로 하려 했는데 상황이 이래서 들어낼 것은 들어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국면에서 평화를 얘기할 수 있겠는가”라며 “‘베를린 선언’ 같은 거창한 것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북한의 이번 도발로 ‘무력도발은 원천봉쇄하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진 만큼, 독일 연설에서는 이러한 방침을 천명하는 데 무게가 실리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우세하다.
북한의 도발이 이어질 경우, 문 대통령은 2단계 비핵화 해법 중 ‘북한의 핵 동결 약속 및 도발 중단’이라는 ‘입구’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채 효과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북한의 이번 도발로 단계적 해법 방식을 전면 재검토하긴 어렵다. 문 대통령이 계속 밝혀 온 대북 관계의 큰 원칙이 대화와 제재·압박의 병행이었던 점을 볼 때 이번 연설에서도 대화의 가능성은 여전히 열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민제 인턴기자 summerbreez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