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미국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은 곧바로 장진호 전투기념비를 찾았다. 노병이 된 미국 참전용사가 눈물을 흘릴 정도로 문 대통령의 연설은 감동적이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6일 뒤, 문 대통령은 주요20개국(G20) 정상회담차 독일 함부르크로 향했고 김정숙 여사는 그곳에서 윤이상 선생 묘역을 참배했다. 묘역 옆에는 윤 선생의 고향인 통영에서 공수해온 동백나무를 손수 심었다.
장진호 전투기념비는 한미 간 혈맹의 아이콘이다. 반면 고 윤이상 선생은 깊은 이념 갈등의 골로 끝내 고국을 찾지 못한 보수와 진보의 대립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문 대통령의 헌화와 김 여사의 참배가 묘한 하모니를 이루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로 나눌 수도 없고 나뉘지도 않는 그 자체로 온전한 대한민국(현충일 추념사)”을 만들고 싶다고 했던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차 방문한 미국·독일에서 메시지를 전파했고 그래서인지 두 참배를 두고 보수와 진보,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 그 어디에서도 비판의 목소리는 없었다. 최소한 사회통합을 향한 문 대통령의 행보만 놓고 보면 차분하고 치밀할뿐더러 진정성도 느껴진다.
하지만 경제 부문은 거칠다. 왠지 서두른다는 느낌이 많다. 공공 부문 정규직화부터 최저임금 1만원 강행, 속도를 내는 탈(脫)원전, 노동시간 단축, 성과연봉제의 사실상 폐지 등은 논란의 연속이다. 혹여 ‘시장친화적’이라는 꼬리표가 붙을까 우려해서인지 카드수수료부터 손해보험 보험료, 이동통신요금 인하까지 개입의 정도가 강하다. 대기업 등 경제주체와의 대화도 부실하다. 전략은 없고 일방적인 밀어붙이기만 있다. 사회통합을 위한 차분함·치밀함과는 너무 대비된다.
좋은 의도가 꼭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최저임금 1만원과 노동시간 단축은 되레 소상공인의 폐업, 소상공인 노동자의 대량해고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해 폐업한 소상공인만도 90만명을 넘어선 상황이다. 카드수수료 인하가 현실이 되자 신용카드사들은 곧바로 인력감축과 서비스 축소로 대응했다. 정책의 풍선효과다. 결국에는 부작용만 남는다. 실제 그런 사례는 많다. 민감한 고용정책의 섣부른 변화, 시도는 특히 그렇다.
6년 전인 지난 2011년 7월 이명박 대통령이 기업은행을 전격 방문했다. 1996년 이후 처음으로 고졸 은행원을 채용한 기업은행에서 고졸 취업대책을 역설하기 위해서다. 다음날 은행계와 산업계는 “고졸 채용을 확대한다”는 발표로 화답했다.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들이 들썩였다. 곳곳에서 미담사례들이 쏟아졌고 고졸 채용박람회도 여기저기서 열렸다. 기획재정부는 ‘고졸 채용 매뉴얼’까지 내놓았다. 안착했을까. 박근혜 정부는 경력단절 여성의 취업 확대를 차별화 카드로 꺼냈고 고졸 채용에 방점이 찍혔던 정책은 시나브로 뒤안길로 사라졌다. 한 특성화고 교감은 “은행권에 취업시킨 학생 수가 2012년에 비해 3분의1로 줄었다”고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정책단절이 초래한 결과다.
성공한 대통령으로 불리고 싶지 않았던 정권은 없었다. 신경제(김영삼 정부)부터 민주적 시장경제(김대중 정부), 혁신경제(노무현 정부), 녹색경제(이명박 정부), 창조경제(박근혜 정부) 등 역대 정부는 하나같이 차별화된 성장전략을 냈다. 정권 초에 100일 계획, 로드맵, 각종 방안 등 실천전략과 5년 뒤의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조급증, 이전 정부와는 달라야 한다는 차별화 전략이 매몰 비용을 키웠고 실패의 단초가 됐다.
정책은 명(明)과 암(暗)이 함께 있다. 더디더라도 경제 체력을 감안하고 재계 등 경제주체들과 격의 없이 만나 하나씩 풀어가는 게 부작용을 그나마 줄일 수 있다. 한국 경제에 ‘도깨비 방망이’는 절대 없다는 사실을 직시한 채 말이다.fusionc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