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脫)원전 정책의 가늠자가 될 신고리 5·6호기의 일시적인 건설 중단을 결정할 한국수력원자력의 이사회를 하루 앞두고 찬반 논란이 점증하고 있다. 한수원 노조는 11일 “주민과 함께 이사회를 원천 봉쇄하겠다”면서 실력행사를 예고했다. 더욱이 한수원이 ‘공사를 일시 중단해달라’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요청에 대한 법률검토 결과 “따라야 할 ‘법적 의무’는 없다”는 결론이 나온 것으로 알려지면서 13일 예정된 이사회 결과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와 함께 절차적 정당성부터 공사 중단 결정에 따른 배임논란 등의 쟁점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신고리 5·6호기 중단에 대한 4대 쟁점을 짚어본다.
①확대되는 위법성 논란…한수원 “정부의 일시 중단 요청 따를 의무 없다.”
이날 김정훈 자유한국당 의원이 한수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이사회 회의 자료를 보면 회사 법무실은 산업부의 ‘공론화 기간 중 공사 일시 중단에 관한 이행 협조요청’ 공문에 이를 따를 법적 의무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위법성’ 논란으로 한수원이 한발 물러선 것으로 해석된다. 한수원은 지난달 30일 신고리 5·6호기 건설에 참여하고 있는 각 업체에 공사 일시 중단을 위한 협조공문을 발송했다. 지난 7일에는 각 업체에 건설을 일시 중단할 경우 발생하는 비용 추계도 제출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오는 13일 ‘공론화 기간 중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 안건을 이사회에서 의결한다는 게 한수원의 방침이다. 이에 대해 업체들은 “(공사 중단의) 법적·계약적 근거가 없다”며 들고 일어났다. 현행 원자력안전법 17조는 건설 중지의 주체를 원자력안전위원회로, 건설을 중지할 수 있는 경우도 ‘허가 기준을 위반할 때’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물론 산업부는 “문제가 없다”고 맞섰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은 국가의 전반적인 에너지정책 방향 전환과 맞물린 결정이기 때문에 주체가 원안위가 아닌 정부라는 게 산업부의 설명이다. 공을 넘겨받은 한수원이 13일 이사회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②건설 결정까지 38개월 걸렸는데…3개월 공론화로 뒤집나
정당성이 결여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고리 5·6호기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38개월의 심의를 거쳐 지난해 6월 최종 허가했다. 관련 기업 600곳이 공사에 달려들었고 5월 말 기준 공정률은 28.8%에 이른다. 원전 계획부터 부지 선정과 주민 설득, 그리고 최종 허가까지 수년간의 사회적 진통 끝에 내린 결론을 한수원이 뒤집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보름이 채 되지 않았다.
공론화위원회에 대한 비판도 여전하다. 7일 국무조정실은 9명의 위원 선정 절차에 들어갔다. 위원장은 정부가 위촉하고 나머지 8명의 위원은 △인문사회(경제인문사회연구회·한국행정학회) △과학기술(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한국과학기술한림원) △조사통계(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한국조사연구학회) △갈등관리(한국사회학회·한국갈등해결센터) 등 4개 분야 8개 기관·단체가 추천한 후보군에서 선정된다. 이렇게 구성된 공론화위원회가 3개월간 여론을 수렴하면 ‘시민배심원단’이 공사 중단 여부를 최종 판단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행위가 탈원전을 강행하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정부가 직접 명령을 하면 책임을 물어야 하기 때문에 찾은 답이 ‘책임 없는’ 위원회”라며 “공론화를 공정하게 하겠다는 말을 믿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③한수원 배임에 시공사(社) 등 소송 가능성
공사 중단으로 인한 후폭풍은 크다. 이미 한수원 이사회에 대한 배임 문제가 불거졌다. 한수원 노조는 이사회가 일방적으로 공사 중단 결정을 내린다면 법원에 ‘공사 중단 의결 무효가처분 신청’을 내고 이사회를 배임 혐의로 고발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인근 서생면 지역 주민들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다만 한수원은 이사들의 배임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시공업체의 줄소송도 예고된 상황이다. 신고리 5·6호기의 총 공사비는 8조6,000억원이다. 공정과 관련해 지금까지 계약된 금액은 모두 4조9,000억원. 이중 이미 집행된 금액은 1조6,000억원에 불과하다. 남아 있는 2조3,000억원을 놓고 법적 공방이 벌어질 수 있는 셈이다. 실제로 2조3,000억원의 원자로·발전터빈 등 주기기 공급계약을 체결한 두산중공업은 1조1,700억원만 받은 상태다.
④연간 26조 매출 원전산업 피해는 어떡하나
탈원전이 본격화하면 연간 매출이 26조원에 달하는 원전산업의 붕괴도 불가피하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국내 원자력 산업 분야의 총 매출액은 2015년 말 기준 26조6,324억원에 달한다. 관련 매출이 있는 기업은 504개다. 이 분야 인력도 3만5,330명이다. 건설·운영 분야 인력이 약 60%를 차지한다. 에너지경제원도 지난해 2월 원전 운영 24기와 건설 4기로 인해 한해 36조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연간 9만2,000명의 고용유발 효과가 발생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당장 철강업계는 최소 2,800억원 규모로 추정되는 원전용 특수 철근 시장을 잃게 된다. 실제로 한수원과 2019년까지 원전용 특수 철근 8만9,000톤을 공급하기로 한 동국제강은 1만톤만 공급한 뒤 납품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