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우리 정부의 기조에는 무엇보다도 현재의 한미 FTA가 양국 모두에 ‘호혜적’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이 반영돼 있다. 문 대통령은 FTA가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에도 이익이 돼왔으며 양국 간 무역불균형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줘왔다고 판단하고 있다. 국내외에서도 이 같은 문 대통령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분석이 잇따른다.
①한미 무역불균형 개선 중=당장 양국 간 무역수지 현황만 봐도 문 대통령의 시각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지난 5월까지 69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 쪼그라들었다.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FTA가 발효되기 직전 해인 2011년 116억달러였지만 2015년 258억달러로 정점을 찍었다. 2016년 233억달러로 소폭 줄더니 올 들어 급감하고 있다. 이는 “한미 FTA는 재앙”이라고 밝힌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자 정부가 대미 무역흑자를 줄이기 위해 공공기관·민간에 에너지 수입 등을 늘리라고 독려한 결과로 풀이된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미국에 대해 100억달러대의 서비스교역수지 적자를 내고 있고 이와 비슷한 규모로 대미 투자가 이뤄져왔다. 따라서 단순히 상품교역수지만을 놓고 볼 게 아니라 전반적인 양국 간 교역의 큰 틀을 보자면 한국과 미국 모두에 윈윈이 되고 있는 상태라는 게 문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②대미 자동차 수출 실적 감소세=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문제 삼는 자동차 분야에서도 무역은 균형점을 찾아가는 분위기다. 한미 FTA가 발효된 후 약 5년간 미국산 자동차의 한국 내 판매량은 300% 이상 늘었다. 문 대통령도 13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FTA가 발효된 5년 동안 우리가 미국에 자동차를 수출한 건 오히려 줄었다”며 “반대로 미국으로부터 한국이 수입한 건 많이 늘었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국산 자동차의 대미 수출은 감소세다. 이런 와중에도 국내 자동차 기업들은 앨러배마주 등 미국 현지공장의 투자를 확충하며 미국 내 고용을 늘리고 있다.
중국산 철강 제품이 한국을 우회로로 삼아 미국에 대량으로 반입되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은 오해라고 파악하고 있다. 중국산 철강 원자재 등이 우리나라의 대미 철강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8%에 불과하며 특히 이슈가 되고 있는 유정용 강관의 경우 2%대에 그치고 있다.
③정부 담담하게 대응하기로=이처럼 무역불균형에 대한 미국 측의 불만이 기초적인 데이터에서부터 오해와 오류로 점철된 만큼 우리 정부는 양국 간 인식의 불균형부터 조율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잡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현 단계에서 우리 정부의 입장은 미국의 요청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미국 측의 요구가 있으면 테이블에 앉아 논의해보자는 게 기본 입장”이라고 말했다. 다만 USTR가 요구하는 특별공동위의 우리 측 대표가 될 통상교섭본부장이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 처리 지연으로 임명조차 되지 않고 있는 만큼 아직 공동위를 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따라서 통상교섭본부장이 임명되고 협의 준비를 마칠 때까지 공동위 회의 시기를 미뤄달라고 미국 측에 요청하겠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