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과 무역·통상 이슈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는 미중 관계의 골이 깊어지는 가운데 미국이 중국산 철강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와 대북 거래은행 및 기업에 대한 새로운 제재를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양국 관계가 본격적인 냉각기에 접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기에 인권운동가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류샤오보의 사망으로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인권탄압국이라는 비판대에 올라서며 인권 문제까지 양국의 갈등 요인으로 재부상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14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추이톈카이 미국 주재 중국대사가 전날 미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에서 열린 전미주지사협회 행사에 참석해 “현재 양국 간의 여러 갈등 사안 때문에 미중 관계가 파탄 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추 대사의 이날 발언은 최근 강경한 입장을 더해가는 미국 정가의 대중 무역 압박 움직임에 대한 반발과 류샤오보의 사망을 계기로 확산되는 서방의 비판적 시선에 대한 중국 정부의 불편한 속내를 반영한다. 추 대사는 “최근 중국의 핵심이익이나 양국 관계의 토대와 관련한 이슈에서 골치 아픈 사안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 같은 사안을 조정하는 배후자들이 성공한다며 미중관계는 파탄이 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유엔의 추가 대북 제재 논의와 오는 19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는 미중 포괄적 경제대화를 앞두고 양국의 통상마찰이 불거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포괄적경제대화는 지난 4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이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 당시 양국 통상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마련한 대화 채널이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미국 정치권과 재계는 중국에 대한 구두 압박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분위기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프랑스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대북 제재에 대한 중국의 역할을 위해 무슨 카드를 가지고 있느냐’는 물음에 무역 카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중국산 철강 등에 “수입제한과 관세조치를 둘 다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미 상무부는 외국산 철강이 미국 안보에 저해되는지 여부를 조사 중이며 사실상 중국산 철강이 피해를 준다고 보고 수입량 할당과 고율관세 부과 조치를 동시에 실행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외국산 철강 수입을 제한할 경우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중국이 미국에 대한 보복조치에 나서면서 양국 간 통상마찰이 무역전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은 또 중국의 대북제재 압박을 위해서도 경제제재 카드를 적극 검토하는 분위기다. 한 외신은 이날 미 고위관리들을 인용해 “트럼프 정부가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은행과 기업에 대한 새로운 제재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지난달 단둥은행을 돈세탁 우려 기관으로 처음 지정하고 이 은행의 대미거래를 중단시킨 바 있다.
여기에 류샤오보의 사망도 미중관계의 갈등을 부추기는 마찰 요인이 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류샤오보 사망을 놓고 공공연하게 중국 인권 문제를 들춰내지는 않겠지만 양국 간 경제협상 이슈가 제대로 풀리지 않을 경우 중국이 부담스러워하는 인권 문제를 우회적인 압박 카드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은 (류샤오보 사망) 문제와 관련해 다른 나라에 엄정한 교섭을 제기했고 (서방 국가들의 비판에 대해) 강력한 불만과 결연한 반대를 표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이 독자적 대북제재를 검토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안보리 체제를 벗어난 독자 제재와 다른 국가가 자국법의 영역을 넘는 행위에 대해 결연히 반대한다”며 “안보리 결의안 통과에 앞서 중국에 협조를 요청한다면서 통과 후 중국을 겨냥해 독자 제재를 하겠다는 것은 배은망덕한 행위”라며 강력 반발했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뉴욕=손철특파원 hb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