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서 20년간 근무해온 이동건(가명)씨는 지난 5월부터 서울시내의 한 바리스타 학원을 다니고 있다. 올해 말에 퇴직할 예정인 그는 퇴직금의 일부를 투자해 카페를 차릴 계획이다. 창업의 꿈을 안고 점포와 인테리어 업체까지 알아보던 이씨는 이제 창업을 포기할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정부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면서 창업 손익계산에 큰 변수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업을 포기하더라도 마땅한 대안을 찾을 수 없어 이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
17일 통계청에 따르면 신규 개인사업자에 대한 통계가 집계된 지난 2002년 이후 2015년까지 매년 100만명 안팎이 창업에 나서고 있다. 개인사업자는 법인사업자에 비해 창업 준비기간이 짧고 자금력이 뒤처진다는 점에서 통상 영세 소상공인으로 분류된다. 지난 16일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6.4%나 올린 시간당 7,530원으로 결정하면서 기존 영세 소상공인뿐 아니라 예비 개인사업자 시장에도 후폭풍이 만만치 않게 불어닥칠 것으로 전망된다.
영세 소상공인들이 주로 활동하는 자영업 신규 창업은 2010년 98만명까지 떨어졌다가 이후 오름세를 지속해 2015년에는 106만명까지 늘었다. 연도별로 볼 때 13년 만에 최고치다. 베이비부머들의 은퇴가 가속화되면서 너도나도 노후 생존을 위한 창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업자 10명 가운데 7명은 3년 안에 문을 닫아 폐업률이 70%에 달할 정도로 척박하다. 일부 재창업자들은 예외지만 대다수 신규 창업자들은 창업경력 부재에 따른 위기대처 능력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최저임금 폭탄’은 창업 리스크를 극대화시킴으로써 결국 자영업 시장의 질을 크게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는 자영업이 중장년층의 실직이나 퇴직으로 떠밀려 창업하는 대안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신규 창업은 줄지 않고 오히려 높아진 비용 탓에 리스크만 더 커질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최저임금 인상이 자영업 시장 진입을 앞둔 예비 창업자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신규 창업 자체가 위축될 가능성이다. 정부는 그동안 자영업 시장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자영업 시장으로의 인력유입 축소정책을 펼쳐왔다. 자영업 시장을 전형적인 ‘레드오션’으로 봤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예비 창업자들은 시장이해도가 낮고 사업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실제로 국민연금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50대 이상 자영업자 45%의 월 평균 수입은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가뜩이나 열악한 자영업 시장이 최저임금 급등으로 초기 창업자들에게는 ‘무덤’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더욱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정부의 정책지원 대상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점도 부담이다. 정부는 사업체 규모와 사업주의 부담능력을 감안해 정책지원 대상을 정한다고 하는데 기존 사업장의 경우 지원 대상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급여지급 정보 등이 있지만 신규 사업장은 자료조차 없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예비 창업자에게 또 다른 걸림돌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신규 창업자에 대한 지원 여부는 아직 논의가 시작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후속 태스크포스(TF)에서 지원 대상과 범위를 정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향후 신규 창업 축소는 제한적이더라도 자영업자의 폐업률만 높이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지배적이다. 국내 자영업 시장은 실업에 따른 대안적 성격이 매우 짙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시기나 대규모 산업 구조조정이 벌어지면 신규 창업이 늘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같은 특성 때문에 최저임금이 인상되더라도 신규 창업을 감소시키는 효과는 미미한 반면 투자 비용부담이 창업 초기부터 발생해 자영업자의 생존율을 더욱 끌어내릴 것이라는 분석이다. 서경란 IBK경제연구소 중소기업팀장은 “최저임금 이슈로 창업을 주저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는 자금적 지원정책 외에 예비창업자들의 각기 다른 창업수요를 흡수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