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이탈리아 감청 프로그램을 구입해 민간인 사찰을 시도했다는 의혹을 검찰이 수사 중인 가운데, 2년 전 마티즈 승용차에서 숨진 채 발견된 국정원 과장이 쓰던 휴대전화에서 해킹프로그램 삭제에 대한 강한 압박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나타났다.
17일 JTBC가 입수한 국정원 해킹프로그램 담당과장 임씨의 휴대전화에 따르면 2015년 7월 6일 저녁 임씨는 나나테크 허손구 이사와 통화했다.
이날 국정원이 구매 대행회사 나나테크를 통해 이탈리아에 있는 스파이웨어업체로부터 원격조종장치 해킹 감청프로그램을 산 사실이 알려지며 민간이 사찰 의혹이 제기됐다.
이후 임씨는 국정원 동료 직원 이모씨에게 “허 이사가 급하게 전화해 달래. 시스템을 오 해달래”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JTBC는 ‘시스템 오’는 포맷이나 덮어쓰기 등으로 추정돼 은폐 시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임씨는 문제의 해킹 파일을 삭제하기 직전인 17일 0시 7분에 국정원 직원에게 잇따라 전화를 걸었고, 같은 날 저녁엔 ‘과장님 감사관실에서 찾는 전화 계속 옵니다’는 문자 등을 받았다.
오후 9시 37분엔 직속상관인 기술개발처 김모 처장으로부터 ‘조금만 더 버티면 우리가 이깁니다’라는 문자를 받았다.
임씨는 18일 오전 1시 23분 ‘그리고’라는 문자 메시지를 김 처장에게 보내려다가 삭제했고, 정오께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화산리 야산 중턱에서 자신의 마티즈 승용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그가 남긴 유서에는 “내국인에 대한 사찰은 없었다. 외부에 대한 파장보다 국정원의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혹시나 대테러, 대북 공작활동에 오해를 일으킨 지원했던 자료를 삭제했다. 저의 부족한 판단이 저지른 실수였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여야는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 활동에 합의했지만, 국정원이 자료제출을 거부하면서 조사가 무산됐다.
이에 4천여명의 시민고발단이 같은 달 23일 나나테크 직원과 원세훈 국정원장 등을 정보통신망법 위반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에 배당됐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건과 관련해서는 특별히 할 말이 없다”고 밝혔다.
해당 의혹은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회 내의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에서 우선 규명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검찰도 수사 과정에서 해당 휴대전화 통화 내역 또는 관련자 진술을 확보해 검토하는 방안을 강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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