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세가 절정에 이르고 있다. 프랑스 순방길에 한미 FTA로 미국은 400억달러에 달하는 무역수지 적자를 보고 있어 이를 바로잡아야 함을 강변했다고 한다. 비공개(오프 더 레코드)였던 발언을 공개한 것으로 보면 다분히 지지자를 의식한 국내 정치용이다.
국내 정치용임은 트럼프 대통령이 재협상이라는 용어를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고 언론을 대상으로 한미 FTA 공세를 높이고 있다는 점에서도 파악된다.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를 ‘G19+1(미국)’이라고 할 정도로 양자 관계와 다자 관계에서도 무소불위로 자국 우선주의를 추구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로 보면 한미 FTA 개정 협상 요구를 결코 만만하게 볼 사안이 아니다.
통상교섭본부를 부활시키고 본부장의 대외직명을 통상장관으로 격상하는 등 문재인 정부의 통상정책 강화 방침은 시의성 면에서 높이 평가된다. 아직 정부조직법이 개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미 FTA 개정 협의를 늦추자고 하는 선에서 시간을 벌겠다는 것이 현 정부의 대응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응논리의 내용 면에서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를 서비스 흑자, 무기판매액 등으로 상쇄하면 미국의 적자액이 대폭 줄어든다는 점을 골자로 미 통상당국을 설득하겠다고 한다.
여기서 그동안 내실보다는 덩치 위주로 통상 분야를 관리해온 우리나라 통상당국의 한계를 발견하게 된다. 지난 2012년 무역 1조달러 달성을 단군 이래 최고의 국위선양 실적으로 내세웠다가 교역 규모가 위축되자 이마저 슬쩍 감췄다.
최근 10여년 사이 국제적으로 글로벌가치사슬(GVC)이 활성화되면서 세계무역기구(WT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들은 무역 규모 증가 이면의 의미 파악에 나섰다. 대표적인 예를 들어보면 중국에서 조립된 아이폰 부가가치의 80%를 미국·한국과 일본 기업이 가져가고 최종재를 수출한 중국 기업에 떨어지는 것은 5%도 안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중국이 수출했지만 중국보다는 다른 국가들이 더 큰 혜택을 누린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이러한 연구를 촉진하기 위해 WTO·OECD 등은 세계투입산출표(WIOD·ICIO)를 개발하는 작업에 나섰는데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큰 일본·중국 등이 연구비를 지원하고 연구에 많이 참여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러한 연구에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국내에 많은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있지만 우리나라의 대미 혹은 대중 무역수지 흑자 부가가치 분석으로 통계상의 무역 불균형 논란에 대비한 연구를 찾기는 어렵다.
상품 수출의 부가가치가 산업에 따라 20~60%라는 점을 고려하면 부가가치 기준의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대폭 줄어들게 된다. 반면 서비스 수출의 경우 부가가치 비율은 60~95%가 된다는 점으로 보면 미국이 기록하는 서비스 흑자의 중요성은 상품수출의 배가 된다. 서비스 외에 우리 기업의 대미 투자, 지식재산권 로열티 등을 부가가치 기준으로 환산해 제시하게 되면 한미 통상은 상호 ‘윈윈’하는 관계임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역총액으로 무역 불균형을 설득하겠다는 정부의 단순 논리는 부가가치 방식으로 전환돼야 한다. 부가가치 기준으로 보면 한미 간 교역 확대 및 경제 긴밀화가 미국에도 도움이 됨을 보여줄 수 있다.
정치인인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통상협상 실무자인 미국 무역대표부(USTR) 관계자들을 설득하는 데는 정교한 경제논리가 필수적이다. 이는 미국과 통상협상을 해본 사람은 공감하는 바다.
오는 8월 개정 협의를 시작해도 개정 협상을 위해 미 당국은 최소 90일 이전 의회에 통보해야 하고 국내 통상교섭 절차를 밟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해 실제 협상은 연말에나 가능할 수 있다. 이 시기에 내실 있는 대응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또 무역통계에 대한 양국의 차이도 밝혀야 한다.
한미 FTA 개정 제안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일단 미국 측 입장을 청취하고 내실 있는 논리로 설득함으로써 위기를 한미 관계 강화의 기회로 바꿀 수 있다. 범국가적 통상역량을 집결해 대응논리를 개발하고 미국 측에 대응해야 할 것이다.
인하대 대외부총장·국제통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