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임혁백 명예교수 "대북 제재·압박은 독재자 대화 유도하는데 써야"

대북 제재와 압박 일변도 정책 역설적으로 북핵·미사일 능력 키워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 '코리아 이니시에이팅' 발돋움 전략

빌리 브란트 동박정책 유효·가능성주의 입각 한반도평화체제 구축

1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임혁백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의 ‘The Possibility of Peace in the Korean Peninsula’(한반도 평화가능성-남북평화의 준비, 구축, 보장) 출간을 기념한 ‘문재인 시대, 한반도 안보와 외교 대토론회’ 에서 김홍걸(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국민대통합위원장,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 임 명예교수, 이홍구 전 국무총리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1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임혁백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의 ‘The Possibility of Peace in the Korean Peninsula’(한반도 평화가능성-남북평화의 준비, 구축, 보장) 출간을 기념한 ‘문재인 시대, 한반도 안보와 외교 대토론회’ 에서 김홍걸(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국민대통합위원장,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 임 명예교수, 이홍구 전 국무총리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임혁백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겸 좋은정책포럼 이사장은 18일 “대북 제재와 압박만으로 북한 체제붕괴를 끌어낼 수 없다”며 “제재와 압박은 북한의 독재자를 협상장으로 끌어내는 용도로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이날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The Possibility of Peace in the Korean Peninsula’(한반도 평화가능성-남북평화의 준비, 구축, 보장) 출간을 기념해 가진 ‘문재인 시대, 한반도 안보와 외교 대토론회’ 기조발제를 통해 이같이 강조했다.


임 교수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과 관련, “북한 체제보장과 흡수통일론 배제, 북한 비핵화를 위한 포괄적 해결책 모색,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새로운 한반도 경제지도를 제시한 것은 코리아패싱(Korea Passing)에서 벗어나 코리아 이니시에이팅(Korea Initiating)을 위한 좋은 제안”이라며 “남북 간 대화를 시작으로 궁극적으로 북핵 동결이나 잠정중단을 전제로 미국과 북한 간에 패키지 딜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날 기조발제 전문.

출판 배경은 2012년으로 거슬러 간다. 2012년에 존스합킨스대 SAIS의 한미연구소 (USKI)에서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지원받아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을 때, 나는 연구주제를 정년퇴직 후의 장기적 연구주제인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과 관련이 있는 주제를 선택했고, 첫 작업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북한민주화 만들기’ (Mongering North Korean Democracy for Inter-Korean Peace) 연구를 시작하였고, 그 결과물을 2015년 8월 25일 고려대출판원 (Korea University Press)에서 영문 책을 출간하였다.

고려대출판원에서 나온 ‘한반도 평화를 위한 북한 민주화 만들기’(Mongering NK Democracy)의 기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먼저, 남북평화를 구축(crafting)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민주화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민주평화론에 의하면 민주국가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의 민주화는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북한의 독재체제는 엄청난 예외적인 체제생존능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독재체제는 냉전종식 이후에도 살아남아 70년간 장기지속하고 있는 사회주의 세습독재체제이다. 왜 북한체제는 예외적인 생존능력을 보일까?

북한의 70년 장기독재의 힘은?

첫째, 북한은 중국에게 지정학적 순망치한의 안보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중국이 미국과의 경쟁에서 안보를 지키기 위해 ‘입술’인 북한을 보호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북한의 핵개발 능력의 향상, 셋째, 아래로부터의 반란을 진압할 수 있는 북한 독재자의 능력, 넷째, 북한은 중동의 봄, 재스민혁명을 불러온 SNS 혁명으로부터 면역체계를 갖추고 있다.

다섯째,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이 단순한 가산제적 세습독재가 아니라 관료적 합리성 (bureaucratic rational)이 있는 당, 관료와 군조직을 갖춘 신 가산제적 사회주의 독재국가 (neo-patrimonial socialist dictatorship)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노동당은 200만 당원을 가진 대중정당이고, 북한의 어용 NGO인 사회주의청년단은 300만을 넘으며, 북한 군조직은 120만이 넘으나, 우리가 알고 있는 ‘선군정치’와는 달리 당이 철저히 통제한다.

북한독재체제 외부세력 제재로 무너지지 않아

이러한 생존요건을 갖춘 북한독재체제가 한국과 미국 같은 외부세력의 압력, 제재, 무력시위로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기본전제이고, 따라서 나는 북한을 외부로부터 무너뜨리기 보다는 내부로부터 자생적으로 민주화시켜서 자연스럽게 체제가 전환하고 그 이후부터는 민주화된 남과 북이 협상과 타협을 통하여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남과 북이 평화체제하에서 상호 이익을 공유하는 것을 확인하고 일상화하는 시간을 거치면서 동시에 남북평화체제에 대한 국제적 승인과 보장을 확보한 뒤에 자연스럽게 통일로 가면된다는 것이다.

북한사회 다원주의화 진전 추세

북한이 내생적 민주화로 갈 수 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으로 북한사회의 다원주의화이다. 김정일의 ‘고난의 행군’이래 살아남기 위해 취한 조치들이 자연스럽게 북한 사회와 경제의 다원주의화를 진전시키고 있다. 전국적으로 장마당이 들어서서 북한 농민과 주민들은 시장경제를 자발적, 자생적으로 열공하고 있는 중이다. 북한의 신부르주아지인 ‘돈주’ (錢主의 한국말)는 북한의 핵심 국가기업 (commanding heights)을 제외한 중소기업, 지방 국영기업, 신산업의 경영권을 쥐고 있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북한의 부동산 붐을 주도하면서 최근 년 3% 경제성장의 주역으로 성장하였다. 북한의 스마트폰 가입자는 400만을 넘어섰다. 북한사회의 다원주의화는 장기적으로 북한정치의 다원주의화를 불러올 것이기 때문에 김정은은 궁극적으로는 경쟁적인 다당제 정치체제로의 전환에 동의할 수 밖에 없는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김정은, 체제유지와 성장 간 딜레마

이러한 도전에 직면하여 김정은은 “핵·경제 병진노선”을 채택하여, 핵을 통해 외부적 위협에 대응하고, 시장화를 통한 경제성장으로 내부적 도전에 대응하려하고 있으나, 시장화는 오히려 북한사회의 다원주의화를 더욱 가속화시켜 김정은 독재체제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 따라서 김정은은 체제유지와 성장간의 딜레마에 처해 있다. 김정은이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독재체제를 버리는 대신 권력에 계속 남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말하자면, 독재체제를 버리고 민주적 경쟁체제 회복에 양보함으로써 권력에 계속 남는 것이 김정은의 합리적 선택이 될 수 있다. 한국과 미국이 해야 할 일은 김정은이 독재체제를 버리고 민주적 경쟁체제 하에서 권력에 계속 남는 길을 선택하도록 금전적 지원을 포함한 여러 가지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이다. 반면에,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계속하는 것은 김정은으로 하여금 철권통치를 계속하게할 구실과 정당성만을 부여할 뿐이다.

북한 민주화, 대만 모델 따라야

북한의 민주화는 대만모델을 따르는 것이 좋다. 시민사회가 전혀 형성되어 있지 않은 북한에서는 대만처럼 민주화를 동네에서 시군으로, 시군에서 도단위로, 도단위에서 중앙정부로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대안적 정당도 정권이 양성해서 다원주의 정당체제를 위로부터 형성하여 궁극적으로는 김정은이 이끄는 노동당과 대안적 반대정당의 후보 간의 선거경쟁이 일어나도록 함으로써 북한의 민주화 과정을 일차적으로 완성해야한다.

이것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북한 민주화 만들기’(Mongering North Korean Democracy for Inter-Korean Peace)의 주요 주장이었다.

가능성주의 입각해 한반도 평화가능성 구축해야

이번에 출간한 나의 신간 [The Possibility of Peace in the Korean Peninsula: 한반도 평화가능성: 남북평화의 준비, 구축, 보장]은 남북평화를 위한 북한민주화 만들기의 후속편이자 “한반도 평화와 통일” 이라는 장기적 연구주제로 쓴 두 번째 책이다.

[한반도 평화가능성]은 책 제목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남북평화의 ‘확률’(probability)을 계산하는 책이 아니고, Albert O. Hirschman의 ‘가능성주의’ (possibilism)에 입각하여 한반도 평화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possibility)을 탐구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김정은의 핵도발과 미국의 제재와 압박 일변도의 대북정책으로는 한반도 평화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러한 ‘불가능한 조건하에서 한반도 평화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빌리 브란트 동방정책 접근법 유효

이는 브란트가 동방정책을 추진할 때 사용하였던 접근법과 동일하다. 브란트는 “정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만들어 내는 예술”이라는 비스마르크를 인용하면서 에곤 바르에게 동방정책 설계를 맡겼다. 에곤 바르는 이를 이어 받아서 동방정책팀에게“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자” (Think the unthinkable),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자” (make the impossible possible)는 구호를 되풀이하면서 상상력이 풍부하면서도 실현가능한 동방정책을 설계해서, 마침내 냉전종식이라는 기회가 왔을 때 콜 총리가 독일 통일을 이룰 수 있게하는 기반을 쌓아놓았다.

대북 제재와 압박 대안 찾아야

이 책은 북한 독재체제가 예외적인 생존능력을 갖고 장기지속성을 과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조만간, 아니면 5년내, 또는 장기적으로 붕괴할 것이라는 북한체제붕괴론(collapsism)에 입각하여 제재, 압박, 레짐 체인지 (regime change)와 같은 외부적 압력을 가하여 북한체제 붕괴를 앞당기자는 구태의연한 압박과 제재 정책에 대한 가능성주의적 대안이다.

북한은 1989년 동구 사회주의 몰락이후 30년 동안 잔존하고 있고 3대 세습까지 순조롭게 달성하면서 체제붕괴론을 허구로 만들었다.


30년간 대북제재 작동한 적 한 번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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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저는 한반도 평화가능성에서, 먼저, 북한체제붕괴론을 비판하고, 지난 30년간 북한에 대한 제재가 작동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제재와 압박은 작동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제재의 역설적인 효과로 북한이 핵강국이 될 수 있는 시간과 돈을 벌어주었다고 비판하고, 제재와 압박에 대응하여 북한이 핵을 고도화, 경량화, 장거리화함으로써, 이제 북한은 더 이상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종이호랑이가 아니라, 한반도 뿐 아니라 미국에게까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 (clear and present danger)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가능성주의를 포기하지 않고 2015년 겨울부터 집필에 들어갔다.

그런데 필자가 본격적으로 이 책을 쓰고 있을 때, 김정은이 2016년 1월 초와 2월 초에 연달아 핵실험을 하고 ICBM (북한은 지구괘도바깥으로 쏜 로켓이라 주장했음)을 쏘아 올렸다. 김정은의 도발은 나의 가능성주의적 평화만들기 구상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비핵화와 평화협정 우선순위 놓고 판 깨져

그런데 위기는 기회라고 하듯이, 해결사가 중국의 왕이로부터 왔다. 이제까지 비핵화 협상이 깨지는 패턴이 있었는데, 항상 거의 합의해놓고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우선순위 (미국과 한국의 선 비핵화 후 평화협정 對 북한과 중국의 선 평화협정 후 비핵화)를 둘러싸고 ‘우선순위전쟁’을 벌이면서 판이 깨졌다. 왕이의 투 트랙은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병행추진함으로써 우선순위전쟁의 소지를 없애자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였다. 왕이는 호주외상을 통해 미국의 반응을 탐색한 뒤, 2016년 2월 23일 워싱턴으로 날아가 국무장관 케리와 만나 담판을 하였다. 케리는 왕이와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에 대한 유엔제재가 제재를 위한 제재가 아니고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함이라고 언명함으로써 실제적으로 왕이의 투 트랙을 받아들였고, 대신 중국이 유엔안보리제재에 적극 참여해야한다고 화답하였다. 왕이는 당시 현안이었던 THAAD를 조기에 한국에 배치하지 않으면 중국도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유엔안보리제재안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약속하였고 곧 안보리제재안이 뉴욕에서 통과되었다.

북, 대화와 협상 앞서 핵·미사일 존재감 과시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은 항상 대화와 협상을 원할 때 먼저 자신의 존재감 (핵능력, 대륙간 탄도미사일 능력)을 과시하고, 중국은 이를 가지고 미국과 협상에 나선다는 것이다. 그것은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에 이은 2007년 2.13합의와 2016년 1월 6일 4차 핵실험 이후 2월 23일 왕이와 케리의 투 트랙 암묵적 합의에서 보는바와 같이 일관된 패턴이다.

왕이의 투트랙과 함께 윌리암 페리 전 국방장관과 핵물리학자 헤커가 핵동결과 Three Nos (No new development, No new weapons, No new Transfer)를 제시하여 부시정권부터 지속되어온 ‘핵 폐기’ (dismantling)보다 낮은 수준의 비핵화 기준을 제시함으써 현실적으로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나올수 있게하여 주었다. 이 책에서는 커버하고 있지 않지만 그 후 미국의 Clapper DNI(국가정보국장) 국장의 주도로 중국, 북한과 간접적으로 물밑에서 협상이 이루어졌으나 Clapper 국장이 2016년 10월 말 투트랙 협상이 북한의 끈질긴 지연작전으로 실패했다고 고백하고 자신은 이 자리를 물러나고 차기 정부에 투 트랙 협상업무를 넘긴다는 고별회견을 함으로써 오바마정부 하에서는 더 이상 북한과의 협상이 없어졌다.

김정은의 연이은 핵도발로 집필을 중단할 뻔 했으나 왕이와 케리, 그리고 헤커와 페리, 그리고 클래퍼가 나의 책 집필을 살려주었다. 그들의 노력과 혁신적인 아이디어에서 나는 한반도평화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었고 그분들에게 감사한다.

한반도 평화구축과 국제적 보장 탐색해야

이 책은 그야말로 북한 독재체제가 예외적인 생존능력과 장기지속성을 보여주고 있는 조건 (불가능성의 조건)하에서 어떻게 1) 남북한 갈등을 방지하고, 2) 그를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고, 3) 일단 평화가 구축되었을 때 남북한 평화를 국제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가를 탐색하고 있다.

먼저 남북한 갈등을 방지하고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을 제거해야한다. 이를 위해서 제재와 압박은 30년동안 사용했으나 작동하지 않았고 북한의 독재체제만 강화하였다. 갈등의 방지를 갈등을 강화할 수 있는 제재와 압박을 통해 달성하려는 것 자체가 모순적이고 역설적이다. 제재와 압박 정책은 북한이 곧 망한다는 북한체제붕괴론(collapsism)에 근거하고 있었다. 제재와 압박을 통해 망할 북한을 더 빨리 망하게 유도하자든지, 북한으로 하여금 압박에 못이겨 핵을 포기하게 하여 북한을 미국의 말을 잘 듣는 허약한 연성독재국가로 변환시키자는 것인데, 그런데 제재와 압박을 계속한 결과는 북한의 체제를 더 강화해주고, 북한의 핵 능력을 더 키워주고, 제재를 하면할수록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번갈아가면서 지원하여 제재와 압박을 무력화시켰다.

제재와 압박은 독재자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유도하는 용도돼야

그러므로 문제의 해결은 제재와 압력이 아닌 대화와 협상 밖에 없고, 케리가 왕이에게 이야기한 것처럼, 제재와 압박은 북한의 독재자를 혼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북한의 어린 미숙한 독재자가 안심하고 협상테이블로 나오게 유도하기 위해서만 사용되어야한다.

이 책은 2016년 6월 말에 탈고했기 때문에 트럼프의 북핵 정책을 다루지 못했다. 그러나 북핵문제에 관해서 이 책이 신간으로서 손색이 없는 이유는 오바마가 끝까지 ‘전략적 인내’ (strategic patience) 정책을 계속하고 북한체제 붕괴론에 입각한 제재와 압박정책을 고수하였고, 트럼프의 대북정책은 문재인대통령이 방미해서 정상회담을 한 이후 어느 정도 기본 전략이 세워진 것으로 밝혀졌으나, 현재 북한의 ICBM 발사로 야기된 새로운 북핵위기로 전략의 조정이 있지 않나하는 추측이 있다. 그러나 “최대한의 압박과 대화”라는 원칙은 고수하고 있고, 기본적으로 압박과 제재를 통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유도하고, 북한 문제를 중국에 외주(outsourcing)를 주어 왕이의 투 트랙 방식에 의해 비핵화와 평화협정 협상를 병행하는 대화를 하려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사실상 트럼프식 투 트랙이다. 따라서 2016년 6월 이후 이 책이 이야기하고 있는 비핵화의 정치가 변한 것이 거의 없고 동일한 구도 속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업투데이트한 신간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나머지 부분은 갈등이 해결이 되었을 때, 어떻게 한반도의 평화구축할 것인가 그리고 그렇게 구축된 평화를 국제적으로 보장하여 한반도 평화체제로 격상시킬 것인가를 논의하고 있다. 평화보장체제 방안은 기본적으로 NATO와 같은 미국을 포함한 동북아지역평화공동체를 구성하여 다자주의적으로 한반도 평화를 상호보장하고, 주한 미군을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는 평화유지군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재조정해야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남은 시간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과 베를린 구상이 이 책이 주장하는 논지와 어느 정도 부합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려고 한다.

코리아패싱에서 코리아 이니시에이팅 역할해야

문 대통령의 방미성과의 백미는 북핵을 비롯한 한반도 외교안보문제 해결에서 ‘코리아 패싱’에서 ‘코리아 이니시에이팅’으로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기로 트럼프 행정부와 합의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문대통령은 딜을 좋아하는 트럼프와 딜을 했는데, 딜의 내용은 ‘최대의 압박과 대화’를 병행한다는 트럼프의 대북정책의 기조를 받아들이되, 이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는 미국의 뒷받침하에 한국이 맡아야한다는 한국주도 (Korea Initiating)에 합의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 먼저 북핵문제 해결을 최우선으로 둔다; 2) 제재와 대화를 병행해야하며 단계적 해법을 모색한다; 3) 압박을 위한 압박을 해서는 안되며, 북한을 비핵화 대화 테이블로 유도하기 위한 압박이어야 한다; 4) 비핵화는 평화적인 방식으로 달성되어야한다는 ‘문재인식 북핵해법’을 관철시켰다. 한국주도(Korea initiating)의 회복으로 전 정권하에서 동아시아와 한반도 안보 문제논의에서 한국이 제외되고 제쳐지는 코리아 패싱 (Korea Passing)을 끝장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코리아 이니시에이팅의 첫 번째 작품은 방미 후 독일에서 발표한 ‘베를린 구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G20 정상회담이 열리는 함부르크가 아니라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대북정책에 관한 베를린 선언을 한 통일독일 수도에서 베를린 구상을 발표함으로써 김대중대통령의 햇볕정책의 연속선상에서 새 시대에 맞는 혁신적인 대북정책을 발표하였다. 문재인대통령은 전임자의 좋은 정책을 이어받고(Echoes), 자신의 혁신적 정책을 선택 (Choices)하여 베를린 구상을 발표하였다.

베를린 구상, 북 체제보장과 북핵 포괄적 해결 모색

문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은 5대 중장기 평화구상과 4대 단기 현안해결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5대 평화구상은 1) 북한체제보장 과 흡수통일론 배제; 2) 북한 비핵화를 위한 포괄적 해결책 모색 (북한 핵의 CVID 비핵화, 평화체제 구축, 북한 안보 딜레마 해소, 북미, 북일관계 개선); 3)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4) 새로운 한반도 경제지도; 5) 비정치적 교류협력사업은 정경분리원칙에 따라 일관성있게 추진한다는 것이고, 4대 단기해결책은 1) 이산가족상봉; 2) 북한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3) 군사분계선 적대행위 중단; 4) 남북한간 평화와 협력을 위한 대화재개 등이고 이를 위해 김정은 위원장과 언제 어디서든 만날 용의가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북한문제에 관한 운전석을 트럼프로부터 물려받은 후 첫 번째 작품인 베를린 구상은 상당부분 이 책의 논지와 부합하고 있다. 첫째, 베를린 구상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최초로 공식적으로 북한체제붕괴론 (collapsism)을 부정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위적 북한체제 붕괴시도를 반대한다고 명시함으로써 김정은에게 흡수통일당할 위험부담 없이 한국과 대화할 수 있다고 유인하였다. 둘째, 북한 비핵화를 위한 포괄적 해결책은 문재인식 투 트랙 (Two Track)정책으로 2005년 9.19, 2007년 2.13 6자회담 합의, 2016년 2월 왕이와 케리의 Two Track의 연장선상에 있는 정책인데, 베를린 구상의 투 트랙이 혁신적인 이유는 안보,경제적 우려해소 (북한 체제보장을 통한 북한의 안보딜레마 해소)와 북미, 북일관계 해소가 투 트랙을 뒷받침하는 포괄적(comprehensive)인 해결 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북핵 완전한 폐기 전제 대화 현실성 떨어져

그런데 베를린 구상이 이 책과 일치하지 않는 점은 ‘북한의 핵의 완전한 CVID 폐기(dismantling)’를 북한 비핵화로 정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북한 핵의 동결 (freezing, containing)이나 잠정 중단 (moratorium)이 아니라 ‘폐기’ (dismantling)를 비핵화로 정의한다면, 김정은이 폐기를 통한 비핵화에 응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우려된다. 윌리암 페리 전 장관과 핵 전문가인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계속해서 북한의 핵 수준은 고도화, 정밀화, 경량화되어서 ‘폐기’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지금으로서 최선의 방안은 북한 핵을 동결시킨 뒤 점진적으로 남북, 북미관계를 개선하여 북한이 핵을 스스로 폐기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폐기를 원칙으로 내세우고 역으로 폐기를 동결로 바꾸어주는 것을 협상지렛대로 하여 북한으로 하여금 협상테이블로 나오게 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을 생각하고 베를린 구상을 했을 것으로 믿고 싶다.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은 대북정책의 여러 대안의 장점을 결합한 절충주의적이고,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 쌓아 놓은 좋은 대북정책 연장선상에서 문재인의 혁신적인 대북정책을 추구한다는 혁신성과 지속가능성을 모두 갖춘 좋은 대북정책 구상이다. 연속성과 지속가능성이 중요한 이유는 과거 정부가 쌓아 놓은 좋은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 남북 간에 상호 신뢰가 구축되고, 남북신뢰의 바탕위에 한반도 평화로 가는 길도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의 김정은은 베를린 구상이 예고된 이틀전인 7월 4일에 미국 알라스카에 도달할 수 있는 8,000km 탄도의 ICBM을 발사하여 선제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구상의 김을 빼려하였다. 김정은은 ICBM 발사로 코리아 이니시에이팅을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미국과 양자주의 거래를 하여 핵에 의한 안보를 보장받으려하고 있다. 김정은의 이러한 도발과 한국이 아닌 미국과 양자주의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된다.

워싱턴에서 결정돼…한미동맹 강화와 남북대화 병행

그러기 위해서는 “월남전쟁의 패배는 워싱턴에서 결정되었다”는 현 미 안보보좌관 맥마스터가 1997년 책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워싱턴에서의 외교전쟁에서 승리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동맹 First“ 전략으로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트럼프와 정상간 관계를 돈독히 해서 김정은에게 코리아이니시에이팅(한국주도)이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실체가 있는 실제라는 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김정은은 첫 번째 대화상대자로서 문재인 대통령을 받아들일 것이고, 실질적인 남북대화가 가능해질 것이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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