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통계, 이것이 문제다]5면 메인: 못 믿을 나라 통계... 통계 혼선에 국가정책까지 표류

한은-통계청 하나의 경제현상 두고 역방향 분석... 후행 지표를 선행지수에 넣어 4년간 경기 전망 오류까지

현장과 괴리 심한 통계도 문제

국내의 한 민간 투자금융기관에서 수석연구위원을 맡고 있는 A씨는 국내 경기 전망 관련 리포트를 작성할 때 가능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먼저 참조한다. 한국은행이나 통계청에서 발표되는 통계 중에는 신뢰하기 어려운 수치가 상당수 포함돼 있다고 판단해서다. 그는 “미래 통계분석에 엉뚱한 자료를 집어넣거나 같은 사안을 두고 한은과 통계청이 정반대 수치를 내놓을 때가 많다”며 “국가 통계를 신뢰할 수 있도록 대대적인 혁신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통계 오류를 유형별로 정리했다.

①제각각 통계=국내 통계기관들이 비슷한 사안을 두고 전혀 다른 결과를 내놓는 경우다. 대표적인 사례로 ‘가계흑자율(통계청)’과 ‘가계순저축률(한은)’ 사이의 괴리를 들 수 있다.


양 수치는 명칭은 다르지만 이론상 같은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가계가처분소득에서 소비지출을 뺀 값을 가계흑자로 보는데 이는 동시에 가계순저축으로도 분류되기 때문이다. 통상 가계흑자율이 커지면 미래 가계 소비 여력이 커져 내수 경기가 살아날 것으로 해석한다. 국내 경기를 예측하는 ‘리트머스지’인 것이다.

문제는 내수 경기 전망의 핵심지표인 가계흑자율과 저축률이 서로 다른 신호를 보내 시장을 혼란에 빠뜨리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 2007년 가계저축률은 3.2%로 전년(4.9%)과 비교해 1.7%포인트나 떨어졌지만 가계순저축률은 같은 기간 22.4%에서 23.4%로 오히려 1%포인트 증가했다. 가계 지갑 사정을 두고 국내 양대 경제통계기관이 역(逆)방향 분석을 내놓으며 충돌한 셈이다. 서울경제신문 분석 결과 양 기관은 지난 10년 동안 총 네 차례(2007년·2009년·2011년·2012년)에 걸쳐 엇박자 통계를 공개했다.

양 기관은 이에 대해 조사 대상과 분석 방법에 차이가 있어 불가피한 결과라는 해명을 내놓고 있다. 통계청 가계동향은 농·어가를 조사 대상에서 제외해 한은보다 포괄범위가 좁고 전세나 보증금 수익을 소득 범위에서 빼 통계 결과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가계동향은 한은 조사와 비교해 포괄범위가 60% 수준이어서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한 대기업의 경영전략 담당 임원은 “조사 성격상 숫자는 다르게 나올 수 있다고 해도 방향성까지 반대로 나오면 자동차·가전 등 내구재 생산기업은 전략 수립에 애를 먹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②엉뚱한 통계=통계기관이 글로벌 표준과 동떨어진 엉뚱한 자료를 토대로 통계분석을 내놓는 사례도 있다. 통계청이 지난해 6월 4년 만에 개편한 경기선행지수가 이 같은 사례다. 통계청은 매달 경기 변화를 예측하는 핵심지표인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를 발표한다. 여기에는 △신규 구직자 수 △월평균 주가지수 △건설수주량 △국고채 금리 등 주요 경제지표가 총망라된다. 국내 경기에 대한 ‘국가대표’ 통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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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선행지수는 직전 8차 개편이 있었던 2012년 이후 약 4년 동안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선행지수가 100을 넘으면 통상 3~6개월 뒤 경기가 개선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선행지수가 2014년 7월(99.8) 이후 2년여간 계속해서 100 이상을 유지하는 동안 실제 경제성장률은 오히려 하향곡선을 나타냈다. 선행지수가 경기 전망을 도리어 방해한 것이다.

통계청은 이에 따라 지난해 9차 지수 개편에서 원자재가격지수를 구성지표에서 제외하며 뒤늦은 수습에 나섰다. 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원자재가격지수는 대표적인 경기 후행지표인데 선행경기지수에 넣은 것부터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며 “다음번 개편 때는 국제유가에 연동되는 ‘수출입물가비율’도 선행지수에서 제외하는 방안이 검토되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③온도 차 통계=통계가 현실을 왜곡하고 더 나아가 잘못된 정책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현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이른바 ‘책상머리 통계’다.

주택보급률(주택 수를 일반가구 수로 나눈 값)을 이런 통계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주택보급률은 2015년 기준 전국 102.3%, 서울 96.0%에 이른다. 일반가구 1가구당 주택 수가 1채에 달하는 것이다. 이 같은 통계를 근거로 정부는 ‘주택공급에는 문제가 없다’는 논거를 내세우고 있다. 실제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취임사를 통해 “아직도 주택시장 과열 양상의 원인을 공급 부족에서 찾는 분들이 계신 것 같다”며 주택부족론을 정면 반박했다.

하지만 현장이 느끼는 상황은 다르다. 주택공급통계에 주택의 질(質)과 외국인 수요 등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의 경우 최저주거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가구 비율(2014년)이 7.1%로 경기도(3.0%)의 2배가 넘는다. 또한 주택 업계는 서울시내 아파트 10채 중 7채는 입주 후 20년이 넘었을 것으로 추산한다. 새 아파트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와 꾸준히 증가하는 외국인인구 등을 감안하면 주택 보급이 넉넉한 상황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박은철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서울의 인구 1,000명당 주택 수는 355.7가구로 파리(605.7가구), 도쿄(579.1가구), 뉴욕(412.4가구) 등과 비교해 낮은 수준”이라며 “서울과 비슷한 런던(399.6가구)에서 최근 공급 감소로 주택문제가 불거지고 있다는 점에서 서울도 공급 확대에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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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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